2023
불교 용어에 시절인연이란 게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과의 만남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때가 있는 법인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도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서 내 마음속에서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히 사람 일로 속상해할 필요도 없고, 떠난 것에 연연할 이유도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담담할 수 있을까? 오래 바라던 일이 어그러졌는데 “그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알고도 놓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집착이 불행을 부른다는 걸 깨닫곤 한다.
한때 이 말을 너무 깊이 새겨서,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곧잘 “시절인연이야” “다 흘러갈 뿐이야” 하고 답하곤 했다. 애써도 안 되는 건 인연이 아니니까 힘 빼지 말라는 뜻에서.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오히려 더 서글퍼 보였다. 공감받기를 원했던 순간에 돌아온 건 담담한 이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맞는 말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 후로는 쉽게 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다만, 내 삶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 믿기로 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늘 시절인연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도 아니다. 나도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이 말이 너무 냉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데, “다 때가 있는 거야”라는 한마디로 쉽게 정리해 버릴 수 있을까?
살면서 사람은 계속 변한다. 그때는 분명 옳다고 믿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흔들리고, 다짐했던 것들도 어느 순간 놓쳐버린다. 특히 순례길을 걸은 뒤에는 나 자신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왠지 성직자 같아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이 감사했지만, 점점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지금은 그저 적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않는 사람. 그래도 여전히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내 마음 한편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는 놓지 못하고, 때로는 너무 쉽게 놓아버리기도 한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 동안 만나고 싶었던 사람, 해내고 싶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애써 마음을 다잡았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다짐을 한다. 마치 배수진을 친 듯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면 작심삼일의 무게가 실감 난다. 매일을 신년 다짐처럼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나는 이 시기의 마법 같은 기운을 빌려 작은 다짐을 해본다.
적당한 사람이 되기로.
추신. 연말이 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언가를 잊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집을 나선 후, 가스불을 껐는지 문을 잠갔는지 불현듯 걱정될 때처럼. 올해도 무사히 잘 살아왔을 텐데도 말이다. 아무튼, 연말은 괜히 ‘쫄리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