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라는 이름의
자존감이라는 말이 최근 몇 년간 화두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나와서 더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다’라는 말도 한다. 자존감(self esteem)이라는 말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던 말이다. 이 말이 최근 화두가 된 것은 아마 우리 사회가 많이 아프고(몸도 마음도), 그 아픔의 원인을 찾다 보니 조명받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존감이라는 말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아무도 없이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라는 자아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무시한 채 자신에 대한 시각을 형성할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즉,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평가 한다는 말이다.
윤홍균 씨가 쓴 ‘자존감 수업’에 자존의 구성요소 3가지를 이야기한다.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 감, 자기 안정감이다. 이 중 ‘자기 효능감’과 ‘자기 안정감’은 타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기 효능감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대표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안전감’은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 스스로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다.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까? 최소한의 든든한 내 편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 많을 필요도 없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준다는 믿음을 주는 한 두 사람이면 충분 할 것이다. 이처럼 자존이 가능하려면 안전한 관계 속에서 타인의 지지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 조차 너무 냉정하다. 한 사람의 가장 큰 고통과 치욕의 뿌리가 가족에 닿아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 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주어진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이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한 적이 있다. 집안, 성격, 머리, 외모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여러 가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자신의 친구들의 자식들과 비교하던 것에서 시작된 단어이다. 이렇게 부모조차 기능적인 측면에 기준을 두고, 자식의 존재를 비교에서 오는 가치로 평가하는 하곤 한다. 이런 환경에서 부모조차도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이기에,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기에 가장 큰 상처로 남는다.
카우아이 섬 종단연구라는 것이 있다. 카우아이 섬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섬으로 지금은 자연환경이 참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만 해도 이 섬은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 겪을 수 있는 모든 불운이 모여 있는 곳이라 불릴 만큼 당시 섬 주민들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주민들 또한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 정신질환자 같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이런 곳에서 교육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을리 만무하다.
카우아이 섬의 종단연구는 사회과학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실험으로, 1955년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였다. 예상대로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부모에게 정신이나 성격에 이상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연구결과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특별한 사실이 밝혀진다.
이 연구의 자료 분석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에미 워너 교수는 이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추려낸다. 이 201명은 이미 충분히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더 극단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극빈층에서 태어났고, 가정불화가 극심하거나 부모가 이혼 혹은 별거 중이며, 엄마나 아빠가 혹은 양쪽 모두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사회 부작용을 보였다. 하지만 이중 1/3 가량인 72명은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 잘 지냈고, 긍정적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자랐다. 그리고 에미 워너 교수는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것은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받아주는 어른이 그 아이의 인생에서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고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때로는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게 된다.
꽃도 과일도 잉여 산물이다.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꽃이 피지도, 과일이 열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영양분이 공급되면, 꽃은 아름답게 만개하고 탐스러운 과일을 맺는 것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겐 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인에게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경험 중요하다. 타인의 지지와 사랑이라는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될 때, 모두 자기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라는 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