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에 담긴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스티븐 핑커는 자신의 저서인 ‘언어 본능’에서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정신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신어는 우리의 마음을 표상하는 것이며, 정신어를 다시 번역해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먼저 생각하고, 적절한 의미의 문장을 만들어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다른 사람과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용어에는 추상적인 개념과 명시적인 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어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람마다 생각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 명시적인 것은 객관적 실체를 가진 것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대부분 4개의 바퀴가 달린 타고 다니는 것을 위한 쇳덩어리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객관적 실체를 가진 것들은 보통 공용어의 정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추상적인 것들은 의미하는바가 다른 경우가 많다.
객관적 실체를 지칭하는 단어들도 맥락이나 문맥에 따라 다른 뜻이나 정의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은유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너는 참 활짝 핀 꽃처럼 웃는구나’라는 말은 얼굴이 웃을 때 꽃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 예쁘다’라는 말인 것처럼. 결국 우리가 ‘꽃처럼 웃는다는’ 말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는 마음’일 것이다.
종종 무슨 말을 내뱉고도 ‘이 말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마음을 언어로 번역해 이야기하다 보니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오해하고,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부모님의 잔소리는 다 다를지라도, 그 잔소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마음은 대부분 ‘걱정되니 조심해라’ 일 것이다. 그렇기에 잔소리 듣는 순간 짜증이 날 수 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는것처럼.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 곧이곧대로 상대방의 말을 사전적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 ‘번역의 오류’로 인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번역의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오해없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라틴어로 ‘나누다’, ‘공유하다’를 의미하는 ‘communicare’라고 한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를 통한 생각의 공유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생각과 내 생각이 충분히 공유되었을 때, 서로의 언어를 오해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속에 담긴 마음을 알 고 있다면 진짜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속에 담긴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