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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Apr 28. 2021

어른

소통하고 공존할 줄 아는 사람

밤 늦게 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뼈해장국이 먹고 싶어 근처에 있던 감자탕 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가계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그래서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한 테이블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른이 왜 그것도 못 참고, 애들도 아니고 감정을 다 표현 하냐고”

“어른이 왜 그런 것도 혼자서 해결 못하고 다 이야기 하냐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람은 함께 있는 친구들에게 굉장히 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왜 우리사회에서는 어른스럽다는 것이 마치 혼자서 뭐든 다 잘하고,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일까? 물론 일상생활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감정에 무뎌지고, 감정을 억누르고 감추는 것이 능숙해 지고, 아픈 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어른스러운 모습이 된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능숙하고, 자신을 잘 위장하는 것은 소시오패스의 특징이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어른’이라는 모습은 인격 장애로 판명된 소시오패스와 닮은 점이 많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공감능력이 결여되고 정서적으로 아픈 사람이 많은 이유는 ‘어른’의 사회적 관념이 잘못 되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사회는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나쁜것이라고 배운다. 그렇기에 어른은 강인해야 하며,  강인함의 의미는 감정에 대한 억제가 능숙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감정적인 것은 다르다. 모질고 독한 것이 강한게 아니다. 그것은 약한 사람이 스스로의 감정을 충분히 수용할 능력이 없어 외면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더글러스 스톤은 ‘대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이 같이 말한다.


“흔히 감정적으로 되는 것과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을 혼동하는데 그것은 서로 다르다. 감정적으로 되지 않고도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면서 극도로 감정적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감정에 대해 제대로 분명하게 말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어른이라고 완전무결하고 아이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더 나은 존재가 되어 혼자서 모든걸 해결하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불안하고, 그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자신의 몫의 불안을 충분히 견디고, 남의 불안까지 조금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른’아닐까. 누군가가 흔들릴 때 ‘그건 어른답지 못한 거야’라고 하는 사람이 아닌 ‘그럴 수도 있어’라고 해주는 사람. ‘어른 말 이니까 그냥 들어’가 아니라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성숙한 어른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해서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 의존할 줄 알고,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잘 소통하고 공존할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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