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재능이 있을까요?
목표한 다섯 개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배움 없이 시작한 그림이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아는 것이 없어 두려운 것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언제나 자유로웠다. 그런데 그림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나면서 부터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늘어날수록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처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동안 그려 온 그림을 보면 실수투성이에 기본기도 없었다. 나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에 관한 이론 책을 한가득 샀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명암을 넣었다. 그리고 미대 입시생처럼 소묘도 했다. 그런데 잘되지 않았다. 눈은 높아져만 가는데, 손이 따라가질 않았다.
“공모전 당선은 그저 운이었어.”
“그림을 직업으로 삼을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은 내게 없어.”
알면 알수록 작아지기만 했다. 그림이 더는 즐겁지 않았다. 부담스러웠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어보면, 늘 얼버무렸다. 그림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이 내게 없었으니까.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은 다들 직장에서 안정을 찾아가는데, 나만 홀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고민하다 보면 금방 새벽 4시가 지났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으면 누운 채 노래를 들었다. 그때 띵! 하며 알림 하나가 울렸다. 그림을 올려 두는 플랫폼에 누군가 댓글을 남긴 거였다. 그것도 새벽 4시에. 나처럼 잠들지 못한 사람이 어딘가 한 명 더 있었다.
“환자입니다.”
“간혹 심신의 안정이 되는 날 찾아보곤 했는데요.”
“독한 약을 견딜 힘이 되곤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그림 부탁드려요.”
그 순간, 내 안에 멈춘 시계가 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누군가의 댓글이 내 꿈을 살렸다. 중요한 건 이론이나 재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때 내 그림이 다른 사람에 비해 화려하거나 기본기가 충실해서 뽑힌 게 아니었다. 잠깐 그걸 잊고 있었다. 널브러진 이론 책을 서랍에 넣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슬럼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