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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11. 2020

집 밖에서 얼어 죽은 귀신 붙은 나

1월 7일(화)-퇴사 7일


’할머니도 연세가 있으시고 혼자 얼마나 적적하시겠니, 고모도 조현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있지만 외박 나와서 며칠간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아버지의 말씀 속 숨은 뜻은 이제 내가 백수니까 충주 가서 할머니랑 고모와 시간을 보내다 와라. 너도 손녀딸로서 조카로써의 몫을 하고 와라. 이렇게 들렸다. 

내게 쉼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서 멍 때리는 것이다. 내가 쉬기를 원한다면 그냥 놔두면 되는 일이지만, 백수가 되었으니 다른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어제 충주에 내려왔다. 


“와우~”

비가 오는 날이다. 어제부터 3일 정도 비가 내린다고 했다. 법원과 시청에 개인 용무를 볼 게 있어서 할머니께 장우산을 빌려서 나가야했다. 

“비 오니까 우산 가져가지 마라.”

“내가 잘못들었나”

“나갔다가 우산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우산 가져가지마라.”

“헉!! 그렇게 깊은 뜻이”     

내가 밖에 나가고 30분도 되지 않아서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어디냐”“왜 안 들어오느냐”

하아... 법원에 가봤더니 시청으로 가서 처리하라고 해서 시청가는 중입니다. 거리가 가까워서 걸어서 가는 중입니다. 

“왜 걸어가느냐, 이상한 사람한테 붙들려 간다. 택시타라” 

시청에서 볼일을 끝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할머니 택시 타고 집에 왔어요”

“택시를 왜 탔냐, 이상한 운전기사 만나서 어디 엉뚱한데 끌고 가면 어떻게 하냐” “...”

“할머니 나 인터넷 업무를 봐야해서. 요 앞에 카페 좀 다녀올게요.”

“그 사람 장사하는데 왜 가냐, 그 사람들도 어두워서 퇴근해야 하는데 네가 거길 왜 가냐.”

시계를 봤다. 오후 5시였다. 동네 브랜드 커피숖 많은데 집 앞 2분 거리에서 커피숖을 갔다.     


화장실 용무가 생겼는데 카페 화장실 가서 업무보기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가서 볼일보고 올게요” 집에 가서 문을 열었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 문 밖을 나왔다. 또 나간다고 하니 

“이X이, 집 밖에서 얼어죽은 귀신이 붙었나.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말씀하신다. 아... 오늘 집에 들어오면 귀가 좀 피곤하겠다. 우리 할머니는 매년 치매 검사를 받으신다. 치매소견이 전혀 없다. 그냥 그렇게 한 평생 살아오셨다. 그리고 26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할머니와 따로 살기를 잘했어. 집 밖에서 얼어 죽은 귀신 붙은 나는 그냥 그렇게 살게요. 가끔 걸려오는 할머니의 전화를 귀찮아하지 않고 제때 받으리라 결심했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집 앞 2분거리 카페에서 차 마시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창 밖에서 실루엣이 보이는 듯 하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는 듯한 느낌. 어휴... 백수 눈치 보인다. 그 와중에 글은 다 안 썼는데 화장실이 또 가고 싶다. 아... 글을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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