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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08. 2020

내 몸을 상대로 임상실험 중

2020년 1월 2일-퇴사 후 2일


사람이 얼마나 안 씻으면 스스로 씻고 싶어질까. 내 몸을 상대로 임상 실험 중이다. 마지막 내 기억으로는 ... 퇴사 전날이었으니까. 12월 30일 작년에 씻었다. 양심은 있으니 양치질과 손과 얼굴 정도는 물로 닦아낸다. 오늘은 자고 일어나서 내 냄새 맡고 불쾌함을 느꼈다. 이게 이불에 냄새가 밴 걸까. 누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열었나. 변기에 볼일 보고 물을 안 내렸나. 나 말고 우리집에 누가 또 사나. 혼자 사는 내게 다른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해 놓을 리가 없다. 원인은 나다. 냄새의 결과물도 나고. 이런 냄새나는 악조건 속에서도 임상실험은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우편물 발송하러 우체국을 가야하는데 직원분께 미안해진다. 모자를 눌러쓰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나마 내 몸에서 가장 청결한 치아상태를 뽐내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다른 분들은 내 실험에 죄가 없으니까 냄새가 나지 않도록 적정거리 유지. 경계태세를 갖춘다. 내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틀막. 롱패딩 꼭꼭 잠가서 입기.     


작년에 일했던 곳은 모자를 쓰고 출근을 해도 직원분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난 그걸 악이용하여 이틀에 한번씩, 머리를 감지 않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센터에 있는 친구들이 말했다.

“선생님, 머리 감을때만 풀고 다니고, 머리 안 감으면 모자 쓰죠?”

아...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 청소년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 그런 것을 잘 알아낼까. 기특해하며 사실... 너에게만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내가 모자를 쓰고 출근하면 친구들이 곁을 주지 않았다.     


셀카 찍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런 날은 나와 셀카를 찍지 않았다. ’그래 괜찮아. 냄새 난다고 피하는거 아니잖아? 그냥... 너희들이 내 곁에 있고 싶지 않은 약간의 꺼림칙함 때문인거잖아?‘ 그렇게 확신했다. 

임상실험은 해가 바뀌고, 4일째 진행중이다. 머리에서 나는 냄새보다 간지러움의 감각이 둔해진다. 몸에서 나는 냄새에도 적응이 되고, 손톱에 낀 때에도 안녕을 고한다.


안녕! 반가워! 오랜만이야! 그렇게 백수가 된 지 4일째 청결하지 않음의 만족감을 느끼며 므흣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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