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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07. 2020

아침이 오는 소리

2020년 1월 1일-퇴사 후 1일


“혜리야, 은주 깨워라”

방문 긁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강아지가 뛰어와 자고 있는 내 몸으로 뛰어든다. 왔다갔다 하며 뛰어들어 멍멍 거리며 깨우기 시작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혜리에게 내 방문을 열어준 장본인.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아침 식사 준비를 하시고, 나는 강아지의 난리 소리에 부스스 일어난다. 우리집 강아지 혜리가 킁킁대며 똥방댕이를 디미는데 그 모습이 싫지가 않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흔한 아침 풍경이다.   

  

“은주야, 일어나라, 분무기가 어디갔지?”

분무기에 칙칙 소리가 난다. 물을 장전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곧 방문을 열고 내게 발사하리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할머니는 한 손에는 주걱을, 한 손은 분무기를 들고 가볍게 나를 포위했다. 아침부터 물 맞는 것도 짜증이 나서 기지개를 펴고 내가 잠에서 깨어 났음을 알린다. 할머니는 내 신호를 받아들인다. 

“밥 먹어라”

중고등학교 다닐 때 흔한 아침 풍경이다.    


“은주야, 일어나라”

순간 정적. 나도 분명 들었지만 잠에 취해 못 들은 척

“은주야 일어나서 이것 좀 봐”

남들에게는 이미 출근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공황장애가 오고 집에서 쉬면서 오전 10시가 되어도 이불 속에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아플수록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챙겨 먹어야 한다며 늘 못 일어나는 나를 깨우셨다. 그날따라. 뭘 보라고 하시는 거지... 싶어서 부스스 눈을 떴다. 

아버지께서 분홍색 장미꽃 한 송이를 내 코 앞에 두고 미소지으면서 계셨다. 

“푸흐흐흐흐흐”

눈 뜨자마자 너무 좋았다. 더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아침 일찍 사 온 장미꽃 한송이에 기분이 좋아져 와락 안아드렸다. 공황장애랑 조울증으로 죽겠다고 난리인데, 그런 딸내미 뭐가 이쁘다고 꽃을 선물하실까. 

33살. 그러니까 3년 전 늦은 아침 풍경이다.  

   

‘음...몇시쯤 되었을까... 이제 일어날까’ 

충분히 자고 스스로 눈을 뜬다. 이미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였다. 그리고 ...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백수가 되면 알람도 안 맞추고 자도 되는데. 이제 잠 많이 자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스스로 다시 나를 돌볼 시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그게 오늘 잠에서 깬 나의 풍경이다.     

퇴사한 지 1일째. 그것도 내가 상당히 좋아하던 직장에서 계약기한이 마무리 되었다. 더 연장하기에는 내게 제약이 많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굉장히. 상당히. 어마무시하게 미련이 남는다. 어찌되었든 어제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은 다르다. 그리고 오늘의 마음과 내일의 마음은 또 달라질 것이다. 내일과 일주일 후의 풍경은 다를 바 없지만 그 어색함 속에 익숙함이 차지하기를. 


괜찮다. 괜찮다.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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