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by 양수리 감성돈

지금의 날씨와 비슷한 계절이였다. 그 당시 내 업무 중 하나는 발달장애 또는 발달이 느린 아이들이 사회진단, 의료진단, 언어진단, 교육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정하고 코디네이터 하는 역할이 있었다. 전화로 먼저 상담이 온다. 우리 아이가 또래보다 발달이 느린 것 같은데 발달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말이다. 몇 가지를 체크하고 예약날짜를 잡는다. 어느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발달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예약일자를 잡았다. 접수 예약하기 위해 필요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사는 곳은 지역이 어디세요? 아이는 년 몇 개월 생인가요? 보호자 성함, 아이 성함 알려주세요”


익숙한 지역명, 익숙한 이름. 저만치 어렴풋이 느껴지는 중고등학교 때 교복 입은 한 여학생이 생각났다. 발달검사를 의뢰한 아이의 보호자인 엄마는 내가 살던 고향이 같았고, 나이가 같았고, 이름이 익숙했다. 아이의 발달검사를 위해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수고를 해야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익숙한 이름을 가진 엄마와 발달검사 중 사회진단을 내가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화를 받고 2~3개월이 지난 후 충주에서 아이를 데리고 발달검사를 받으러 엄마가 올라왔다. 그때 직장 동료분께 말해서 내가 아는 사람 같다고. 진단을 대신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하겠다고 하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나는 멀찌감치 한 아이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냥...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중에 종합진단을 받고 아이의 발달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난 그 회의 결과를 듣지 않았다. 내 멋대로 그 사람의 삶을 무겁다, 가볍다 판단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데... 그런 짓을 저지를까봐 ... 그런 날이 있었다.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이 되면 3~4학년 정도에 사회복지 관련 기관에 실습을 하러 온다. 우리 팀에는 6명 정도에 사회복지 실습생이 있었다. 내가 맡은 업무로 인해 실습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었다. 어느날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오다가 복도에서 사회복지 실습생 중 한 남자학생이 그 자리에 멈췄다. 앞서가다가 그 학생을 멀뚱하게 바라봤다. 우리 앞에는 목발을 짚고 다리 한 쪽에는 보조기구를 차고 걷는 연습을 하는 남자분이 서 있었다. 실습생은 그 남자를 보며 누구야. 라고 말했고, 걷는 연습 중이던 분은, 어? 누구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둘은 복도에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마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남자 실습생은 고개도 못 들고 조용히 있었다.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걷는 연습을 하던 그 남자와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다. 그 친구는 대학교 다니다가 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재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중에 기관 말고 밖에서 만나서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단다. 본인은 대학생활하며 사회복지 실습을 하러 온 기관에서 장애를 갖게 된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나는 모르는 감정이다. 그러나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은 해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햇살이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내겐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다고 그것을 내가 더 낫다고 우월해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글은 끝맺음을 찾기가 어렵다. 그 또한 내 틀안에서 정의내리고 끝내야 함에, 그저 밤하늘을 한 번 올려보게 된다.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도, 당신도, 그네들도...

사회복지를 하며 이런 날들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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