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5일(토) - 퇴사 후 25일
삼일 전, 그러니까 1월 22일부터 2월 22일까지 한달 정도 우리집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전 직장 센터에서 만나게 된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는 편이다. 시골인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이 친구들이 놀러오는 건 참으로 달고 기분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선긋기가 필요할때도 있다. 친구들에게 말한 우리집 금지령을 내린 이유는 너무 놀다보니 글이 안 써지고, 에너지가 딸리고, 백수인데 쉬는 기분이 안 들어서 라고 말했다. 그러나 숨은 속 뜻은 따로 있다.
우리의 만남에는 돈이 든다. 백수이기는 하지만 성인은 나 혼자이기 때문에 카페를 가도, 편의점을 가도,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모두 내가 돈을 지불한다. 한 두 번은 그러려니 했고, 직장 다닐때는 내가 돈벌이를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많이 후달린다. 집에 12개입 쥬스를 사면 2주 정도 마시고, 라면을 5봉지 살 때도 2주는 먹으며 지내야 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친구들이 놀러와서 냉장고를 열면 보이는 쥬스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사 둔 라면을 몇 봉씩 끓여 먹다보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엥겔지수가 높아진다. 마트에 가서 라면을 한 봉지 사도, 이게 내가 먹고 싶어서 사는 것인지, 애들이 오면 먹을 거 없으니까 미리 사다두는 것인지 나도 헷갈린다.
경기도에서 자취하며 대학원을 다닐 때 일이 생각난다. 월세 생활을 했고, 매 끼니를 챙겨 먹어야했고, 책이나 원서 값으로 써야하는 지출이 많았다. 용돈은 늘 부족했고, 아르바이트는 해도해도 통장에 잔액이 불어나지 않았다. 어느날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그 당시 지하철 1호선 역곡역에서 살고 있었다. 아는 오빠가 내가 배고프다는 것을 알고 밥 사줄테니 나오라고 했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오빠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나는 사당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갈 교통비도 없었다. 차마 오빠에게 교통비마저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 내 자신에게 눈물이 났고,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고 대학교만 졸업하고 취업한 또래 친구들이 부러웠고, 나는 모든 것이 부끄러워서 자취방에서만 시간을 죽이며 보냈다. 그렇게 살았던 적도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쌀도 10kg짜리 1포대가 있고, 김치도 한 통 가득하다. 집은 더 이상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많이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다시 그 배고픔이 반복될까봐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내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학원 시절에 아는 오빠에게 지하철비가 없어서 밥 얻어먹으러 가지 못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너희들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많이 힘든 일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사실 내 식대로 표현했지만 그 말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너희들은 아직 어렸다. 그 대신 한달 정도 우리집 금지령을 내렸다. 우리집에 오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그만큼 내가 지갑 열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3월에 개학하면 학교 다니느라 바빠서 자연적으로 만남이 줄어들지 않을까.
“선생님, 설날되면 세배하러 올게요. 세뱃돈 주세요”
너희들이 했던 말이다. 그 말에 마음이 좀 아팠다. 너희도 어른이 되면 이런 어른도 있음을 이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