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파먹기, 누구인가.

by 양수리 감성돈

2020년 2월 4일(화) - 백수 35일째

요며칠 외식을 많이 했다. 백수답지 않게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며칠간은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리하는 데 취미가 없는 나는 그나마 안 먹는 것들은 바로바로 버리려고 노력한다. 상한 음식은 버리고 먹을 수 있는 건 어떤 조리를 해서 먹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냉장고를 자신있게 열었다.

어?

‘누구인가, 누가 이미 냉장고를 파먹었는가’ (궁예버전)

깜짝 놀랐다. 계란도 몇 개 있을 줄 알았고,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식재료가 있으리라고 당연히 믿었다. 냉동실에는 그나마 냉동만두랑 아이스크림, 다진 마늘 기타 자잘한 한 번의 끼니가 되지 못하는 식재료들이 몇 개 있었다. 좌절감이 컸다. 분명 돈을 아끼려고 냉장고만 믿었는데 그 믿었던 냉장고가 날 배신한 것이다.

또다시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마트에 가서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먹기 위해 또다시 채워야 한다. 비우기만 하면 편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다시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어색한 기분이다. 대신 일주일 정도 어떤 식사를 할 것인지, 묶음으로 파는 채소를 구입하면 어떤 요리를 하면 상하지 않고 싱싱할 때 잘 차려먹을 수 있는지, 저렴하고 적당한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지 생각할 때가 되었다.

장보기 해야 할 목록을 적어보아야겠다. 장볼 때 구입 비용을 얼마정도 책정 할 것인지, 그에 알맞게 장을 보는 법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할 때가 왔다. 뭘 먹으러 갈까 입맛에 당기는 대로 외식만 하면 분명 편하기야 하겠지만 주머니 사정은 더 안 좋아진다. 오래 건강하고, 잘 먹는 백수가 되려면 장보는 것에 조금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틀 후면 집에 손님이 오셔서 1박 2일 머물고 간다. 그동안 2번 정도의 외식을 할 예정이다. 그것도 감안하여 이번주 장보기 목록과 비용을 적어봐야겠다.


냉장고 파먹으려던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너무 뭐가 없어서 이참에 냉장고 청소를 했다. 다시 채우기 위한 준비 완료! 장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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