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3일-나로 살기 54일째
어렸을 때 들장미 소녀 캔디, 링, 하니 등의 만화를 좋아했다. 주인공은 하나 같이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뭐든 꾹꾹 참고 힘내서 달리는 내용이였다. 그래서 그게 맞는 삶인줄 알았다. 공주는 늘 왕자님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겨울왕국을 보며 항상 기다리는 것, 소중한 것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주인공 안나와 엘사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왜 우리 시대때는 외로워도 슬퍼도 참으라고 했을까. 그래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곪아 터져서 내게 공황장애로 발현된 것은 아닐까.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렸을적. 마음이 힘들었던 그 시절에 내게 참지 말고 표현해도 된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나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우울증이 심해서 정신과 약을 먹으러 다녔다. 매주 병원을 가서 의사 선생님께 얘기를 해야하는데... 뭐 할 말이 없었다. 늘 비슷한 일상. 달라지지 않은 우울, 변함없는 생각들을 매주 의사 선생님께 말해야 한다는 게 지쳤다. 그래서 어느날부터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빈 천장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때 보호자로 동행한 할머니도 얘 좀 보라고.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약만 먹는다고 삶이 나아지는 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이 약을 먹어야 하는 것 같아서 항상 약을 먹었다.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들에 탓하며 살았다. 하지만 참으라니까 참으면 나아지는 줄 알았다. 공황장애가 시작되고 아프다고 울분을 터트리고 목청껏 소리도 질렀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행동들을 많이 했다. 결국 감정의 분화구가 터진 것이다. 제때 제대로 된 치료나 상담, 내 감정표현을 했더라면 나는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탓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본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바란다. 내 할머니, 내 아버지, 내 고모도 같은 상황을 겪어온거니까 나처럼 어른이 되어 크게 터지지 않고 그때 그때 해소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난 사랑이, 사람이 목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