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9일-나로 살기 69일째
할머니와 함께 살던 어릴 적. 겨울이 될수록 내 신발은 따뜻했다. 전날 비를 맞고 집에 와도, 눈길을 헤치고 집에 와도, 축축하던 신발이 다음날이면 뽀득뽀득 소리가 날 만큼 잘 닦여있고 따뜻했다. 비싼 신발은 못 신었지만 따뜻한 신발은 늘 신고 다녔다.
할머니는 항상 아랫목에 신발을 두셨다. 할머니께서 주무시는 방 한 켠에 가족들의 신발이 있었다. 할머니, 아버지, 고모, 나까지 네 켤레가 신문지 깔려진 아랫목에 덮혀져 있었다. 어렸을때는 별 기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레 따뜻해진 신발을 신고 학교로 갔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생활을 시작했을 때 비를 맞고 자취방에 왔다. 신발을 벗어두고 몸을 닦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학교로 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신발이 어제 축축한 그대로다. 한번도 걱정하지 않았던 일이 걱정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이제껏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각해야 할 일이 된 것이다. 그때 처음 아랫목 뜨시게 해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한 겨울 차가워진 신발을 신고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출근하면 아무리 따뜻한 양말을 신어도 온기가 잘 채워지지 않는다. 출근하며 일하는 내내 발가락이 시려워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면서 일을 한다. 퇴근한 후 자취방에 들어가 제일 따뜻한 곳으로 가서 몸을 녹인다. 또다시 신발은 벗어둔 채로.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할머니네 댁에 오랜만에 가서 자는 날이였다. 할머니 댁에 있다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날, 나가려고 신발을 신다가 깜짝 놀랐다. 아랫목의 뜨뜻함이 신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 물어보니 신발을 방안에 두고 주무셨다고 한다. 감사해졌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할머니께서 내게 준 사랑을 나는 잘 모르고 살았구나. 감사함을 느꼈다. 입으로는 꾹 다문 채.
가끔 그 온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