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중2병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이였다.

by 양수리 감성돈

2020년 3월 15일-나로 살기 75일째


나는 외동딸이다. 외동딸이기는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컸고, 조현병인 고모도 함께 였기에 집안에서 나는 관심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주말만 되면 늘 심심해서 친척 언니한테 놀러갔다. 시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던 곳이다. 사촌언니는 나랑 3살 차이가 났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사촌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이였다. 언니가 어디를 가면 나는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자연스레 한 종교에 가게 되었다. 할머니를 따라서 더 어렸을 때 성당을 다녀온 바 있지만, 교회에 풍경은 조금 낯설었다. 뭔가 더 밀집되고, 방바닥에서 미사? 예배?를 본다는 게 다리가 저릴 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 종교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는 십자가도, 마리아상도 없었다. 우상숭배라고 여겼다. 유월절 예배가 있었으며,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존재가 한국에 있다. 나는 이 종교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학교 다녀와서 혼자 집에 있는 것도 지겨워서 맨날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면 자매님, 자매님 하면서 인사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밥도 같이 먹고 미사도 같이 봤다. 그리고 교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결국엔 너무 빠져들어서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학교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학교에서는 몸이 아프다고 조퇴를 받거나 학교를 빠지고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도 그런 나를 반가워하지는 않았다. 학생이니 학생으로써 본분을 열심히 하고, 교회를 나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내가 다니는 교회를 보고 이단이라고 했다. 이단?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은 사탄이야!!! 주변에서 핍박을 줄때마다 결속력을 더 강해졌다. 십사만사천명만 구원받을 수 있는데 내가 열심히 교회에 다녀야 나도 그 안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였다. 세례를 받고도 내가 몇 번째 세례를 받은 사람인지, 나는 구원받을 수 있는건지. 매일 그 생각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아버지께서 오셨다. 먼저 할머니댁에 도착해있었다. 나는 하교한 후 집으로 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 방으로 들어가보니 내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 나는 그때 일기를 쓰고 있었고, 교회에 대한 모든 내용을 적어두었었다. 아버지께서 오셔서 그 일기장을 몰래 보시다가 놀란 것이다. 할머니도 그제서야 내가 교회를 다니고, 남들이 말하는 이단 교회를 다닌다고 너무 화가 나셨다.

아버지는 그대로 집을 나가 몇 개월 동안 나와 연락을 끊으셨다. 할머니는 내게 교회 다니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어지는 법! 나는 내가 진실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더 주위에서 핍박을 주는 거라고 여기며 몰래 몰래 더 열심히 울부짖으며 교회를 나갔다. 1년이 지났을까. 나는 스스로 교회를 그만 다니게 되었다. 매일 교회에 갈때마다 ‘마지막’ ‘마지막 때’가 오고 있다고 하는 말에 질려버렸다. 지쳐버렸다. 그리고 교회에 헌신하는 것 보다 내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차츰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쯤 사촌언니도 교회를 그만뒀다. 가끔 여행을 다니다가 그 교회명만 보면 마음이 아늑해진다.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교회를 믿고 싶지 않고, 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중2병이 끝났다.

최근 코로나 19와 함께 한 종교의 이름이 매스컴에 자주 나온다. 내가 다녔던 곳은 그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 교리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큰 교리압박으로 여길지 어느 정도 몸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다. 그래서 더 종교가 무섭다. 종교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지금 나는 무교이다. 절도 가보고, 성당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았으나, 뭔가를 믿고 싶지 않다. 얼마전, 알게된 지 15년된 오빠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너 혹시 신O지 다니니?”

“뭔 개똥 같은 소리야?”

“너 귀 얇잖아. 남의 말 잘 믿잖아.”

하긴.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옛날 생각을 하면 충분히 나도 그 종교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 하나 살기도 빠듯한 세상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즐거울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난 그저 마이웨이. 내 길을 가기로 했다. 어느날 나이가 들면 종교나 사회생활이 그리워질 때 사교적 모임으로 종교에 찾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 중2병이 아니다.


그때는 잘 모르고 맹목적인 헌신을 했지만, 이제는 컨트롤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차라리 어렸을 때 겪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내 중2도 범상치 않았음을 고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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