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4일-나로 살기 74일째
재작년 겨울 내 고향 충주로 가는 길, 충북 음성에 있는 병원을 들렸다. 정신병동에 입원해있는 고모를 보기 위해서다. 고모는 2년째 정신병원에 입원 해 있다.
2년 전, 그 날 할머니는 며칠전부터 머리가 아프셔서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가정폭력이나 학대 당하고 계시냐고. 어디서 이렇게 머리를 다치신거냐고. 솔직하게 말씀해보시라고. 할머니는 그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힌 거라고 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현병이 있는 딸내미한테 맞았다고. (나에게는 고모)
할머니에게 폭행이 있던 그 날, 폭력 당사자인 고모는 정신병원에 실려갔다. 정신병원에 얘기해서 구급차가 직접 고모를 실러 왔고 고모는 그렇게 병원에 실려갔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고모가 병원에 입원해서 많이 나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을 병이 아니잖아요. 또 병원 밖에 나오면 또 똑같은 상황이 생기고 이게 벌써 40년이 넘는 일인것을. 그 누구에게도 고모가 나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월 고모를 보러 갔는데 병원에 있는 모습이 편해보였다. 얼굴도 많이 피고 손도 많이 안 떨고 눈도 불안해 보이지 않고 간식비 넣어 달라고, 과일 먹고 싶다고 말하는 고모는 예전보다는 많이 편해보였다. 그래, 그거면 된거지. 낫고 안 낫고가 아니라 고모가 편하면 된거지, 할머니는 그렇게 고모한테 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딸내미라고 사과, 감, 과일 이것저것 싸서 먹을 것을 주고, 춥다고 옷도 챙겨오고, 가져가서 병동 식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간식을 봉지 가득 챙겨주셨다. 아버지는 간호사분께 주려고 음료수를 가져오셨다.
최근에 코로나 19로 인해 고모가 입원해 있는 곳은 면회, 외출, 외박이 모두 금지되었다.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그곳에서도 노력하는 중이다. 고모의 얼굴을 못본 지 한달이 넘었고, 할머니는 딸내미가 답답해할까봐 매일 걱정스러운 한숨을 쉬신다. 거기 계신 간호사분께 간식비 보냈으니 매점이라도 데리고 나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환자가 당뇨 관리도 해야하고 살이 좀 쪄서 간식을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매일 10~20분씩 할머니는 간호사에게 간곡하게 전화해서 말하고, 간호사분들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한다. 할머니의 입장도, 간호사의 입장도 모르는 게 아니라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참... 남들은 느끼기 어려운 우리 가족만의 따뜻함이다. 아버지도 자신의 여동생인 고모에게 간식비 부족하지 않냐고 돈을 챙겨서 매점에 넣어주셨다. 우리 가족 그렇게 다시 산산이 헤어져서 할머니는 충주에, 나는 두물머리에, 고모는 병원에,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터로 돌아갔지만 다시 돌아올때까지 그렇게 우리 서로 편하게 잘 지내요. 사랑합니다. 우리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