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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Mar 29. 2019

편가르기, 그 불편한 끼리끼리

편가르기, 그 불편한 끼리끼리     


페루의 수도 리마에 만리장성 같은 긴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페루 사람들은 이 장벽을 ‘수치의 장벽’이라고 부른다. 이 벽은 판잣집에서 최소한의 생계조차 버거운 빈민촌 사람들과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선 부촌을 가르고 있다. 

3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벽은 빈민촌 사람들이 부촌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3m가 넘는 담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도 다시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담 너머 부촌에는 넓은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이들에게 빈민가 사람들이 주거 환경을 오염시키고, 불법 건축물을 짓거나 절도와 약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벽을 세웠다고 말한다. 


부촌 사람들에게 도시 빈민들은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장벽의 길이가 10km에 달하다보니 빈민촌 거주자들은 바로 옆 동네조차 2시간 이상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리적인 고통보다 가난이란 수치심을 아이들에게까지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편가르기는 페루 리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누구라도, 언제라도 존재할 수 있다. 편가르기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적 단위'인 '집단'들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페루의 리마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는가 하면, 피부색에 의해, 좌파냐 우파냐 하는 사상에 의해, 종교, 출신 지역, 성별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나눠진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한정된 자원에서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면 자신의 집단이 유리해 지기 위해서 가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집단의 우월함을 내세워 자존감을 내세우기 위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된 유형은 경제적인 차이에 의한 편가르기다. 

고대 약탈경제에서부터 자본주의 경제에 이르기까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는 철저하게 영역에서부터 생활 전반에 걸쳐 분리되어 왔다.  

그러한 분리는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다루어져왔고, 화가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오만함을 경고해왔다.      

사회고발 그림을 많이 그려온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열차’를 보자. 

오노레 도미에, '삼등열차'

그림 속 열차 칸에는 희망 없는 오늘을 무감각하게 대하고 있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얼굴엔 침울함만이 흐른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작은 위로마저도 사치로 보인다. 흔들리며 가는 열차 속의 사람들은 서로 눈빛조차 마주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의 침묵은 음울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가는 곳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곳이 그들에게 저주스런 절망의 땅이 기다릴 뿐이다. 그들의 목적지가 다르지만 사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곳으로. 

    

도미에의 다른 그림을 보면, 우아한 열차 안에 단 두 쌍의 부부가 등장한다. 지팡이를 든 남자는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고, 나들이 복장을 한 여자는 신문을 읽는다. 옆의 부부도 우아한 모습이다. 여자는 고개를 젖히고 영화처럼 흘러가는 풍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실크모자를 쓴 남자는 꼿꼿한 자세로 앉아 무언가를 생각한다. 이들 네 사람은 귀족인 듯 모두 하얀 장갑을 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일등열차’다.      

오노레 도미에, '일등열차'

도미에게 보는 열차는 두세 개의 칸막이로 객실을 나누고 있다. 객실마다 요금이 달랐고, 가장 싼 삼등실은 걷다 지친 서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일등실은 부자의 안락한 공간이지만, 비바람에 젖는 삼등실은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이러한 한 열차내의 두 집단의 전혀 다른 풍경은 그림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도미에의 열차가 그리고 있는 세상의 극단적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새로운 빙하기에 접어들어 온통 꽁꽁 얼어붙은 미래의 지구다.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열차 한 대가 무한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물과 음식을 자급자족하며 일 년에 한 바퀴씩 궤도를 순환하며 달린다. 

승객들은 빙하기를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머무는 칸은 계층에 따라 음식과 환경, 심지어 노동의 강도마저 다르다. 열차의 꼬리 쪽 칸은 노동의 대가로 받은 바퀴벌레로 만든 블록을 먹지만 앞쪽 칸의 사람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스테이크를 즐긴다.      


피라미드로 얘기되는 인간의 수직적 계층구조를 이 영화에서 수평적인 계층구조로 바꾼 것뿐이다. 


꼬리칸의 경우 ‘생존’이 중요한 문제가 되지만, 설국열차의 앞 칸으로 이동할수록 삶의 유형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열차 칸의 앞으로 갈수록 ‘세계’는 진보하고 조직화되지만 인간미는 메말라 간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장면

영화 설국열차와 도미에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차이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하는 것이다. 영화는 적극적인 저항과 봉기가 이루어지지만 도미에의 그림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긍해버린다. 그런 면에서 도미에의 그림은 우리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위의 예가 독점적 자본과 지위에 의한 편가르기라면 사상에 의한 편가르기는 더 끔찍한 형태로 나타난다. 전쟁, 학살, 감금 등이 난무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좌와 우의 대립이다. 


이러한 좌우의 대립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형태로 나타났다. 해방 이후 사상대립이나 한국전쟁, 그 이후 벌어진 4.3학살, 5.18을 거치며 수십 년을 지속되어왔다.      

한국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 피카소에 의해 그림으로 남겨졌다. 그는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을 대량 학살해 절멸시키는 행위)가 무차별하게 일어나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고 자신의 고향 스페인에서 벌어진 내전 참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피카소가 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붓과 캔버스 뿐이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가 그림으로 남긴 게르니카 학살은 극단의 시대를 상징한다. 극단의 끝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내란을 일으킨 프랑코 장군의 요청으로 폭격을 가한 나치 공군은 게르니카를 독일공군 최첨단 기종의 성능 실험장으로 이용했다.


게르니카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인구라고 해봐야 고작 5천명 남짓이었고, 그 어떤 군사시설도 없었다. 그럼에도 폭격을 감행한 것은 적에게 위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들에게 적이란 민중이었고 그 민중의 저항의지를 꺾기 위함이었다. 민간인 사망은 그들의 실수가 아닌 목표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지구 반대편에서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아픈 소식이 건네진 것이다.     

그는 1951년 5월 파리 살롱전(Salon de Mai)에 흑백 유채화 한 점을 내 놓았는데 그 그림이 바로 ‘한국에서의 학살’이었다. 로봇과 같은 철가면을 쓴 병사들이 왼쪽의 벌거벗은 아이와 임신부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에서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학살의 가해자는 군과 경찰, 우익 청년들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민간인 대학살일지도 모른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 여전히 조명 받고 있는 것은 100만 명이란 엄청난 희생자를 만든 인간의 이기심과 사상 갈등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 역시 사상의 대립처럼 전쟁과 학살을 낳는다. 종교적인 편가르기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민족에게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편가르기가 가장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나타난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400년 가까이 이어진 이 전쟁은 종교적 열정에 세속적 욕망이 결합된 살육극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편가르기로 볼 수 있지만 내부 깊숙이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탐욕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럽 전역을 광기에 휩싸이게 했던 이 전쟁은 이후 역사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십자군은 1차 원정에서 그들의 성지라고 하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성공을 거두지만, 이후 모든 원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는 결국 사람들의 신앙심 약화로 이어졌고, 교황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또한 왕권을 견제하던 귀족들의 죽음은 왕권 강화를 불러와 절대왕정의 바탕이 되었다. 

귀스타프 도레,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십자군'

또한 이들의 이동 경로와 식량이나 무기 확보라는 명목으로 급속히 성장한 도시는 무역과 사상 교류의 통로가 되어 시민사회를 탄생시켰다. 


편가르기로 시작한 전쟁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것이다.     


편이 갈리는 형태로 빈부에 의한 것은 사회적 차별을 낳고, 사상과 종교에 의한 것은 무자비한 살육을 일으켰다면 피부색, 인종의 의한 편가르기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 


피부색이나 인종에 의한 편가르기는 힘의 원리가 작용한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방식에서 자비는 보이지 않는다. 강자가 약탈하고 노예로 삼는 것은 일반적인 침략전쟁의 양상과 유사하지만 여기에 피부색이 결합될 경우 모든 유형의 차별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유색의 피정복자들은 노예가 되거나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상품으로 취급받는 경우는 근대 사회까지 지속되어 왔다.

터너의 노예선이란 작품을 보면 피부색이 다른 약한 민족이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겪는 비참함이 드러나 있다.

터너, '노예선'

그림에서 핏빛 노을이 바다의 용광로처럼 온 하늘과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태양은 이미 그 모양을 잃고 쇄해 그 잔상만이 남아 있다. 배는 태초의 혼란처럼 미쳐 날뛰는 폭풍우를 뒤로 하고 멀어져 가고 있다. 

무자비한 바다는 아무런 동정심도 없이 버려진 노예를 삼키고 있다. 파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쇠사슬과 이미 제 주인을 잃어버린 다리가 그 끔찍한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즐거운 만찬이라도 있는 듯 물고기와 갈매기 떼가 피 냄새를 맡고 그 주위를 맴돈다.      


이 그림의 배경은 1781년 영국의 노예선 종(Zong)호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약탈을 하고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자메이카를 향하고 있을 때다. 그 배에는 약탈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배의 갑판 아래엔 엄청난 수의 노예들도 있었다. 그런데 노예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던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오랜 항해로 이미 식량은 바닥이 났고, 전염병마저 돌아 7명의 선원과 60명의 노예가 죽었다. 위기 상황에서 선장은 너무도 충격적인 결정을 하고 만다. 


그는 갑판 아래로 내려가 전염병으로 죽은 노예를 포함해 122명의 여자 노예와 어린아이를 갑판 위로 끌고 나와 상어가 득실거리는 카리브 해에 던져 죽게 했다.


터너의 노예선 부분

그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보험금 때문이었다. 노예는 상품이었고 그들 기준에 하자 있는 상품은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그림에는 이러한 사연을 말해주는 세부적인 묘사나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지배하는 강렬한 색채와 감성적인 터치와 구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진한 붉은색 석양을 통해 피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 아래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폭풍우 속의 성난 바다와 참극을 보여준다.      


그런데 1840년 5월 이 그림이 영국에서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동정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금잔디색의 하늘과 석류빛 바다의 지나친 광기로 가득한 천재’, ‘재주에 비해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 없는 작가’, ‘상식과 인류의 오랜 전통까지 무시한 작가’, ‘어리석고 무모한 고발’이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만행을 고발한 그림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과 시민들의 반응은 이렇게 싸늘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편가르기에 의해 집단화 되어 있었고, 화가는 그들의 집단에서 이단아였던 것이다.     


이러한 피부색에 의한 편가르기가 지금도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실화를 다룬 영화 ‘그린북’이다.

영화 속 ‘돈 셜리’는 부와 재능을 모두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다. 

그가 순회공연의 일정으로 인종 차별이 가장 심한 남부 지역을 정하자, 주변에선 모두 이를 말린다. 그럼에도 그가 이 공연을 고집한 것은 백인들 앞에서 재즈가 아닌 클래식을 연주할 수 있는 흑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억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흑인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 '그린북' 포스터

그런데 시작부터 그의 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숙소를 잡더라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토니보다 허름한 숙소를 잡아야했고, 백인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는가하면 늦은 밤에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한다.      


영화는 지금까지도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흑인 인권문제와 이 사회의 고집스런 장벽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인종차별적 편견은 제도나 시스템만으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편견과 갈등의 순환은 비단 인종 차별뿐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에서 소통의 벽마저 새로 세워졌다. 대화를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대화의 권리마저 특권이 돼 버린 시대다. 기성사회가 만들어 놓은 편가르기 문화와 시스템은 우리 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로 유전되듯이 전달될 것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누르고, 약함이 강함을 누른다.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 자세를 부드럽게 하면 지금까지 이어져온 편견과 억압, 갈등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맺고 묵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폭력적인 배척보다 따뜻하게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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