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한국에서 살다 보면 한 가지 오해를 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밖으로 알리는 데 있어 지나칠 정도로 서툴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한국 사람들이 ‘겸손이 곧 미덕’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에 자신과 브랜드를 알리는 일은 중요한 문제다. 특히 국가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은 그 나라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국가브랜드는 한 국가에 대한 신뢰를 대외적으로 높여주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만, 한국에서라면 상황이 좀 다르다. 오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이를 쌓아 올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이 최대 과제이던 시대에 한국은 근대화가 시급한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한국의 기업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기업브랜드 가치가 국가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예를 들어 국제사회에서 삼성이나 LG와 같은 브랜드를 들 수 있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기능과 디자인 면에서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품질 우위를 보인다. ‘질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는 소비자에게 믿음을 준다. 이는 다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의 요인이 된다.
문제는 기업브랜드 가치가 국가보다 높으면 이를 역전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국가브랜드 가치가 높아 기업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아지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브랜드 활동이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경우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국가가 전적으로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도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점을 고민해 왔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국내용이란 비판을 들어야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를 자세히 따져봐야 할 때가 왔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삼성이나 LG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기업 이미지를 국가 브랜드 상승에 활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한계에 부딪혀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기업부터 한국 이미지가 입혀지는 것이 ‘디마케팅(demarketing)’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과의 이미지 결합을 주저해왔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보이는 이런 모습은 나름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때 한국산 제품에 대해 다른 선진국 제품 대비 무려 30%에 가까운 할인율(디스카운트)을 적용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업들은 그 설문 결과가 지금도 적용된다고 믿고 있다.
언제부턴가 기업으로서 국가 브랜드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미국 사람들이 현대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고 삼성 로고가 새겨진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이돌 스타의 음악과 춤을 즐기지만, 이들이 한국 회사이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믿는다.
이러한 현상을 어느 정도 사실로 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사실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류의 영향이 아시아의 이웃 국가뿐 아니라 멀리 남미와 유럽에서까지 퍼졌다. 이들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동남아시아만 벗어나도 한국에 관해 물었을 때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북한과 한국(남한)을 구분해서 아는 경우는 드물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체제의 한국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느 쪽이 한국이고, 어느 쪽이 북한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음악, 음식, 패션, 예절 등 다양한 분야를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
민간이 국가브랜드를 일정 수준 이상 올려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민간에 역할을 남겨둘 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1950~1960년대 독일이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이라는 슬로건으로 독일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 독일의 이미지가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 올려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 한국은 엄밀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참고해볼 만하다.
과거 한국이 해방과 전쟁으로부터 막 벗어나 가난했던 시절과 비교해 모든 여건에서 달라졌다. 브랜드에 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시나브로 다른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부 제품에서는 확실한 우위에 있기도 하다. 이제 이미지 전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제품만으로 이미지를 쌓던 방식을 뛰어넘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큰 강점이 있다. 한국이 쌓아온 정체성과 특성 등이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결합한다면 새로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제품의 가격과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환상의 결합이 될 수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로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런데 추상적이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바로 와 닿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4G, 5G의 시대는 좀 더 구체적인 한국 이미지를 요구한다. 바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한 것이다.
그 상징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와 소재,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외국인들의 이해가 가능한 문화적 존재로서, 그리고 지식 사회로서의 한국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필요한 때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말 ‘사무라이’는 세계 누구나 아는 보편적인 의미가 되었고 일본을 연상하게 한다. 이들에게 사무라이를 생각하며 일본을 떠오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주류 세력은 ‘무사도’를 일본의 가치관으로 이어받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사무라이 정신’을 잔인한 이미지를 지우고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움의 긍정적 가치로 개발했다. 이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글로벌 마인드는 무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다. 1899년 ‘니토베 이나조’가 일본의 정신을 세계에 알린 『사무라이의 정신(武士道·무사도)』은 지금까지도 동양학 연구의 기본서가 되어 있다.
이후 다양한 외국어권 국가에서 사무라이의 개념에서 파생된 ‘사무라이 경영학’, ‘사무라이 도덕률’, ‘사무라이 전법’ 등 갖가지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미 사무라이를 주제로 한 영화는 수백 개를 넘어섰다, 심지어 전 세계 어린이들은 사무라이 게임을 하면서 즐긴다. 명령과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엄격한 행동 규범을 유지하는 충성스러운 전사들은 이제 일본만의 개념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문화 일부가 되었다.
사무라이와 함께 ‘닌자’ 역시 고유의 일본 무술 이미지와 결합해 각종 매체를 통해 전 세계 문화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며 닌자처럼 담벼락을 오르거나, 다른 사람을 감시하거나 공격하면서 닌자 흉내를 낸다. 닌자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닌자 개념의 보편화로 생겨난 각종 혜택을 누리는 것은 종주국 일본이다.
심지어 한국 배우가 한국 캐릭터가 아닌 일본 닌자 캐릭터로 할리우드에 본격 진출하기도 한다. 한국에는 지금까지 그런 상징적 개념에서 약했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안다는 것은 한류나 패션을 조금 아는 정도에 그친다.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실정이다.
캐릭터는 정체성을 대변한다. 한국이 세계 속에서 그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대변하는, 한국의 정서를 품은 캐릭터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그러면서 사무라이 정신보다 더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힘이 있는 것으로 ‘선비정신’을 든다.
선비정신은 한국 사회와 역사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정신이다. 고려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지식이라면 누구나 선비정신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이다. 그런 열린 선비 전통은 현대 국제사회에 맞는 모범적인 인물상을 제공할 수 있다. 개인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도덕적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일부 조선 시대 선비의 부정적인 면이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은 부분도 물론 존재한다. 정쟁이라든가 현실도피, 지나친 형식주의 등이 선비의 본 모습을 가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선비의 모든 것을 부정할 정도인지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선비의 역사를 사색당파의 붕당 정치로 깎아내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졸한 청백리의 긍정적 기운이 나라를 운영하는 데 힘이 되었던 면은 왜 보지 못하는가를 묻게 된다.
작은 이익에 매몰된 이전투구가 아니라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찾으려는 선비를 보아야 한다. 정치에서 이를 실현하려는 이상주의자인 선비가 현대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보는 것이 맞다.
현대 사회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형이상학보다 형이하학에만 몰두하고 있다. 결국 철학이 사라지고 쾌락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선비 정신이다.
선비 정신은 현대 사회에 맞지 않아 제 가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찾지 않아 잊힌 것일 뿐이다.
선비정신이 말하는 인간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덕목이 될 수 있음에도 고리타분한 무엇으로 치부됐다. 훌륭한 사람의 자취나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선비 논 데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학식과 예절로 명분과 의리를 지키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는 것 외에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력도 선비의 덕목이 된다. 그리고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박기후인(薄己厚人)’, 강한 것은 억제하고 약한 것은 부양한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 세상의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거워할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하라는 ‘선우후락(先憂後樂)’, 권력을 가져도 재화를 탐내지 않는 ‘청빈검약(淸貧儉約)’ 등은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들이다. 이것은 한국만의 정신이 아닌 세계정신으로 거듭날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세계 어느 민족, 어느 국민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덕목이다.
특히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 일만을 좇는,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잃고 살아가는 시대에서 그들에게 선비정신은 자신의 위치를 말해줄 것이다.
조선의 관료이자 선비로, 일반에게는 단발령에 거부했다는 것과 일흔이 넘은 고령에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알려진 최익현은 이런 선비의 정신을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교육 분야에서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인격을 높이는 것이 아닌 개인의 지위와 직업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비정신은 한국의 교육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또한,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상품도 될 수 있다.
앞에서 얘기한 선비정신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지행합일(知行合一)’ 정신은 한국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교육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지행합일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는 것을 행한다는 말이다. 이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교육의 영역이 등장한다.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앎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구몬 학습법’과는 출발 개념부터가 다르다. 이 다름은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선비 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영국이 지난 300년 동안 굳건히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상류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비 정신은 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도 담고 있다. 이는 17세기 이후 종교개혁을 수용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근면과 절약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을 종교적 구원의 징표이자 소명으로 삼았던 그들은 향락과 퇴폐를 멀리하고 금욕생활을 최우선으로 했다. 이러한 정신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장구한 500여 년 동안 조선을 지탱해온 선비정신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찾아 언급한 선비 이상룡 선생은 이런 조선의 정신을 잘 말해준다.
이상룡은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광복군을 길러낸 조선의 선비다.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쓰고 초대 국무령으로 일하기도 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자녀들을 포함해 독립운동을 한 공으로 훈장을 받은 사람만 해도 11명이다.
그러한 그의 선비 정신의 맥을 끊기 위해 일본은 지난 1942년 철도를 놓는다는 핑계로 집을 갈라놓기도 했다.
이렇게 선비는 자신을 잃지 않고, 강한 세상의 바람 앞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았다. 이런 선비정신은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한국의 내면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정신의 세계화나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만약 선비 정신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수정될 수 있다면 일본의 사무라이를 능가해 국제사회로 확산할수도 있다. 이는 단지 소비품을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사람들이 사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진정으로 세계 속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포용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지금의 세상은 무절제한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다. ‘선비’는 한국의 전통에서 태어난 보편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