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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Jul 31. 2019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한글'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한글을 마주하는 세계인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한글 문자 체계의 과학성과 경제성에 대한 감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우수한 한글의 진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무지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그 뜻이 서로 통하지 않아…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1446년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면서 내세운 한글의 존재 이유다. 한글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기원과 만든 인물이 밝혀진 문자다. 

훈민정음 언해본

이 한글에 대해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은 “24개의 단순한 알파벳과 몇 가지 조합 규칙만으로 무한에 가까운 소리를 표현해낼 수 있는 놀라운 언어”라고 극찬했다.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인 ‘존 맨’은 그의 저서 『알파 베타(Alpha Beta)』라는 책에서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소개했다. 메릴랜드 대학의 ‘로버트 램지’ 교수는 “세계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문자는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1994년 6월호』에서 UCLA의 지리학 교수 ‘레어드 다이아몬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이며,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해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라고 극찬한 바 있다. 


언어 연구학의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도 세계 모든 문자 순위를 매겼는데 1위의 자리에 한글을 올려놓았다. 그 이유로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하여 약 8,000개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결국, 소리 나는 것은 거의 다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에 비해 일본어는 300개, 중국어는 400여 개의 소리밖에 표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에서 말하는 이유는 엄밀히 말해 한글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새 소리, 바람 소리’ 등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적을 수 있는 것은 한글뿐 아니라 로마자나 키릴문자 등 표음문자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특성이다. 


가장 경제적인 문자


다른 문자로부터 한글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우선 그 과학적인 원리와 체계적인 문자의 구성에 있다. 글자를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글은 과학적이다. ‘ㅁ’은 입술의 모양, ‘ㅇ’은 목구멍 모양, ‘ㅅ’은 이빨 모양에서 본뜨고,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한글이 체계적이라는 또 다른 이유는 자모를 만들면서 기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는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기본자인 ㄱ에 획을 더해 ㅋ을 만드는 식이다. 모음도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한 ‘ㆍ, ㅡ, ㅣ’를 기본 글자로 하고, 나머지는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하거나 조합해서 만들었다. 


이러한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알게 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서문을 쓰고 정인지 같은 신하들에게 글자에 대한 설명을 적게 한 책이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될 때까지 우리는 한글의 창제 원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이 발견됨으로 써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한글의 과학적이고 간결한 체계 덕분에 한국의 문맹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새종대왕상

즉, 100명 중 한 명이 채 되지 않는 수의 사람만이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한다. 세계 최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문맹률도 한국보다 높고,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 역시 한국보다 문맹률이 높다. 이는 누구나 배우기 쉽게 만들어진 한글 덕분이다.


일본과 중국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글을 배우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나 역시 처음 중문학을 전공하면서 한자 익히는 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만 했다. 

미국이 쓰는 알파벳은 한글처럼 표음문자이긴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단어를 표기하려면 알파벳을 길게 나열해야 하므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나타내는 소리가 단 한 개뿐이며, 개별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 역시 하나다. 한글이 한자, 히라가나와 알파벳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이유이다.


문자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크게 표의문자(뜻글자)와 표음문자(소리글자)로 구분할 수 있다. 표의문자는 그림 문자나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베끼는 상형문자와 같이 시각에 의해 말을 전달하는 문자로 한자가 대표적이다. 표의문자는 모든 사물의 다양한 뜻을 오직 하나의 글자로만 표기해야 한다.  한자의 경우, 그만큼 글자 개수도 많아 중국인들은 평생 글자를 배워도 완벽하게 다 익히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간자를 지정해 단순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자를 익혀야 한다.


반면 표음문자는 발음되는 소리를 중심으로 표기하는 문자다. 음절을 중심으로 표기하는 음절 문자와 음소를 중심으로 표기하는 음소 문자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음절 문자인 일본의 가나 문자는 50음도라는 음절로만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기해야 해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글과 같은 음소 문자는 각 음소를 조합해 발음대로 어휘를 만들 수 있어서 자음과 모음 조합에 따라 무수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또 아무리 조합된 문자의 수가 많더라도 제자(製字) 원리만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익히는 데 문제가 없다. 오늘날의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가진 이러한 과학적 구조는 모바일 환경을 맞아 더욱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마자를 쓰는 서양 언어와 달리, 한글엔 받침이 있고 형태도 네모꼴이라 타자기 등 ‘기계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당시까지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컴퓨터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문제는 말끔히 사라졌다.


자음과 모음의 체계적 조합으로 짜인 한글의 특성은 모바일 시대를 맞이해 진가가 나타나고 있다. 휴대전화 자판은 10개 내외로만 문자 입력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영어나 일본어는 자판 하나에 여러 개의 문자를 배당해야 한다. 중국어는 훨씬 더 복잡한 체계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 한글의 경우엔 기본 자음과 모음이 8개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획과 쌍자음 단추만 추가하면 모든 글자를 매우 빠르게 조합해낼 수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문자 체계가 발달한 것도 이런 한글의 입력 편의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야말로 스마트폰 시대에 꼭 맞는 최적의 수단인 셈이다.


한글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한글은 이렇게 최고의 과학성과 편리함을 동시에 가진 문자다. 그런데 이런 한글이 위기에 놓여 있다. 일본 강점기에는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글이 위기에 처했다면 오늘날에는 스스로 한글을 훼손하고 외면하고 있다.

내가 대전에서 한글 도안을 이용해 단체복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반응이 한글은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선택한 것은 의미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로 조합된 디자인이었다.

자신들의 문자에 대해 비하하는 모습에 크게 당황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서울의 명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한국의 거리를 걷는지 미국의 거리를 걷는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과거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맞서 자신들의 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글이 부끄럽고 자랑스럽지 못하다 하여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영화 <말모이>에서는 주인공 정환의 입을 빌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있다. 그리고 말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라며 민족의 정신을 잊지 말자고 얘기했다. 말이 있는 곳, 즉 한글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민족의 의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때 편찬된 현대적인 국어사전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문화적 자부심이다. 세계에 고유의 말을 가진 민족은 많지만, 자신의 글까지 가진 국가는 드물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말과 글을 잃을 뻔했다. 이때 언어적 독립운동인 한글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은 1919년 3.1 운동 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식민지 전술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문화 통치란 온건한 통치가 아닌 민족정신 개조의 통치방식이었다. 이는 총독부가 중심이 되어 조선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고 더욱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 민족을 완전히 말살하기로 하고 ‘창씨개명’, ‘신사 참배’ 강요, ‘한글 금지 정책’을 제도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때 자신들의 글과 말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국어학자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말모이’ 사전이다.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은 ‘말을 모은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전’의 뜻은 말씀 사(辭), 법 전(典)이니 ‘말의 방법’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미적으로는 말모이 뜻이 사전과 같다. 실제로 말모이는 1911년부터 주시경,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 민족주의적인 애국계몽의 수단으로 편찬했다. 말모이는 많은 희생과 망명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비극이 함께 담긴 사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지키길 원했던 한글이 오늘날에 와서 천시받고 냉대받는다. 애정이 사라진 자리엔 나조차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가득하다.


세상 그 무엇이건 애정이 사라지면 잊힌다. 잊히면 결국 소멸에 이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6,000여 개의 언어 중 2주에 한 개꼴로 소멸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언어 소멸은 인류 문명에 있어서 하나의 재앙이다. 언어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만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쌓인 지혜도 그대로 묻히기 때문이다. 한국어라 해서 더 안전하고 나아가 유력 언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언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거나 사용 인구가 줄면 자연 도태된다.


하나의 예가 바로 아이슬란드어다. 오늘날 아이슬란드어는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처음 이 땅을 개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비록 면적이 한반도의 절반에 불과하고, 아이슬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3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순혈 언어’라는 자부심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수백 년 전의 고어로 된 문서를 자연스럽게 읽고, 외래어도 자신들의 문자체계로 바꿔 사용한다. 예를 들면, 전기(electricity)는 라브마근(Rafmagn)이라 하는데 ‘호박의 힘’이란 뜻이다. 또, 컴퓨터는 텔바(tölva)라고 부르는데 ‘숫자(tala)를 예언하는 여자(völva)’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한 것은 디지털화한 세상으로 급속히 변모하면서부터다. 아이슬란드어는 스마트폰에서 문자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 작은 인구를 위해 스마트폰 개발자들이 문자 지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도 이들 언어로 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슬란드의 사람들은 영어 위주로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슬란드의 고유 언어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유럽 지역의 언어 중 3분의 2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언어를 가진 국가 대부분은 자신들의 언어가 소멸할 것을 두려워하며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처럼 이런 언어 소멸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연재해에 의해 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 자체가 소멸하는 경우가 있고, 중세 흑사병처럼 질병이 대유행하는 때도 있다. 그 외에 경제나 정치적인 사정때문에 소멸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도 한번 겪은 경우다. 이는 인구나 경제력 등 국력이 약해지면 언어 경쟁력이 떨어진다. 바로 일본에 의한 강점기에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 교육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던 때가 그랬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아이슬란드어처럼 사회관계망(SNS) 시대에 언어의 식민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새로 추가되었다. 


한국의 경우 최고의 디지털 언어로써 인정받고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언어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결국 소중한 문자를 잃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어는 태어나 자라고 번성하다 사라지는 생명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오래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는 것처럼 언어도 사랑하고 아끼며 보호해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언어에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언어에 의해 잠식되고, 언어를 잃은 문화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마치 농작물을 키우며 약을 치고 밭을 매주지 않으면, 잡초들에 의해 밭이 잠식되는 것처럼 외부의 언어들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이다. 한국의 언어는 아직은 그런 위기에 있지 않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는 언어를 남들이 사랑해줄 리가 만무하다.


언어는 대화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고 정신과 혼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이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언어와 문자가 같아 서로 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가 분리 운동을 하는 것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은 반대로 분단국가이면서도 하나의 민족임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언어 때문이다.


한민족의 정신적 통합에도 언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언어를 잃는 것을 넘어 정신을 잃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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