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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라봉 Mar 18. 2024

해가 지기 전에, 아이 데리러 가는 미션!

맞벌이 부부의 직장 거리는 정말 중요한 것...ㅠ

오늘은 아빠가 회식을 한다고 하여 엄마의 유치원 하원을 점찍어 놓은 날이다. 일찌감치 퇴근 5시로 변경해 두고 오늘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다행히 엄마인 내가 다니는 직장은 출퇴근에 대한 조율은 유연한 편이고, 집중근로시간인 11시-5시만 지키면 변경은 가능하긴 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하고 있냐는 남편의 원성을 사기에도 좋은 제도이다..^^;;;, 유연한 만큼 업무도 유연하다고 해야 하나...?)


어제까지는 야근했으니, 오늘은 진짜 빨리 나와야지 생각하고 5시에 딱 퇴근 찍고 나왔다. 이틀 연속 밤에 못 봤더니 아이도 섭섭함이 많은 것 같았고, 아침에도 계속 들었던 "엄마, 환할 때 데리러 와"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지 싶었다. 이따 저녁 햄버거도 먹으러 가자고 했으니 같이 가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간다. 태양빛이 아직 나의 눈높이에 있는데 부디 해가 지지 않길 바란다. 해가 길어진 3월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ㅠ)


엄마의 회사가 먼 것은 이렇게 치명적이긴 하다. 도저히 일반적인 퇴근으로는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다. 늦게까지 봐주는 유치원이고, 5시에 퇴근했는데도 (ㅠ) 여전히 길바닥에서 마음만 동동거린다.


언제까지 남편이 하원을 전담할 순 없고, 그렇다고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또 다른 사람을 붙여 하원하고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도 마음이 쓰리다. 아이에게는 주양육자와 마주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주 양육자가 할머니라면 할머니를 만나야 하고, 이모라면 이모를 봐야 한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분담해서 육아를 하고 있기에 두 명이지만 그중에 아이는 엄마를 더 많이 찾고 있으니, 엄마와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후... 5시에 딱 퇴근해서 바로 광역버스를 타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중간지점에서 탄 택시가 선택 미스였을까, 6시 대 딱 걸리니 참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택시 요금은 요금대로 올라가고 ㅎㅎㅎ 해는 지고 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현실 타격이 꽤 온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이 아빠의 희생과 아이의 기다림이었다는 것, 그게 더 많이 와닿는 날이다. 물론 맞벌이의 목적은 우리 가족의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서도 있지만 엄마인 나의 일을 하고 싶은 욕심으로 더 많이 버텨온 것이 맞다.  욕심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스스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여하튼, 오늘의 미션은 성공했을까? 유치원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었다. 해도 지지 않았고, 보통 남편이 7시쯤 데리러 갔다고 했으니 나름대로 선방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유치원 입구에 놓여 있는 아이 신발과 가방을 보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라봉이가 마지막이구나...'

유치원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아이 신발과 가방

그리고 불 꺼진 돌봄 교실... 아이는 원감실에서 원감 선생님과 있었다. 보통 하원 후 엄마를 보면 "엄마~~" 하고 안기는 아들인데 저녁도 못 먹고 엄마를 기다리느라 힘이 다 빠졌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엄마를 맞이한다. 시무룩한 아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높여주고 싶어서 한껏 큰 목소리로 말했다. "라봉아! 하늘 봐 봐, 아직 파랗지? 환할 때 엄마가 왔지? 그치?" 그래도 아이는 큰 반응이 없었다. (ㅠ) '밥을 안 먹어서 그럴 거야.'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설상가상으로 택시를 타고 왔기에, 다른 방법으로 집에 가야 하는데, 유치원에서 집 가는 길은 좀 애매했다. 처음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버스가 40분 있다 온단다... 5분 거리인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라봉이는 버스를 타고 싶어 했는데, 그 마음도 들어주지 못했고 결국 택시를 타고 가자고 다시 설득해야 했다.(ㅠ)


택시 타고 곧장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라봉이가 엄마랑 매장에 앉아서 먹고 싶다고 했으니 여기서 먹고 가기로 한다. 우선 배고픈 아이를 배 불리는 게 중요했다. 밥을 먹으면 에너지가 솟는 아이니까! 다 먹으니 역시, 600m 정도 되는 우리 집까지, 엄마와 달리기 시합을 하자며 뛰어가는 아이다. 신나게 엄마와 집으로 뛰어가서, 응가도 한번 시원하게 싸고, 씻고 드디어 라봉이는 엄마와 노는 시간을 맞이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엄마도 열심히 함께 논다. 아이는 분명 반쯤 눈이 감겨 졸린 상태였는데, 엄마와 놀려고 애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엄마, 유치원 가기 싫어, 푹 자고 일어나면 엄마랑 같이 놀 수 있다고 했는데, 못 놀았어..." 어제 엄마를 못 보고 잤고, 일어나면 엄마랑 놀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오늘도 잠들면 못 놀 것 같다는 생각에 버티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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