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기, 연말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자궁수축억제 링거를 맞으며 보냈고, 다행히 해가 지나기 전에 퇴원했다. 출산까지 남은 5개월,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새 해가 밝았다.
자궁근종 괴사로 발생했다던, 그 통증은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일시적이라니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그 통증으로 5개월을 버티라고 했으면 난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거다. 뱃속에 있는 태아 라봉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회사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했다. 연말 1주일은 원래 예정되었던 휴가라 굳이 입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임신 중기가 되어 배가 조금 나오고 있는 것 외에는 불편함 없었고, 정말 아팠던 시기가 지나니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어쩐지 의연해진 모습이었다.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년 초라 제안서 업무도 있었고 4월, 5월에 오픈할 프로젝트의 공간디자인과 설계를 맡았다. 입사하고 1년 7개월 지나니 공간디자인 업무 전반을 맡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출산시기의 공백을 메꿔줄 새로운 직원 채용 공고도 올렸다. 당시, 나의 육아휴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출산 휴가 3개월은 자리를 비워야 하니 누군가는 필요했다.
나의 업무를 그대로 받아줄 친구가 필요했으니, 적극적으로 채용과정에 임했다. 처음엔 경력자를 뽑고 싶었는데,면접까지 진행하고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을 뽑았다. 자리를 비우기 전 먼저 손발을 맞추고, 작업을 이어서 맡아줄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준비했다. 2개월 정도 함께할 시간이 있었지만,업무 적응도 하기 전에 내가 곧 자리를 비워야 함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신입으로 들어온 이 친구도 사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출산휴가 대체라 하니 당황했을거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필요한 정보를 준비하고, 나의 업무도 적절히 배분하여 배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모든 내/외부 커뮤니케이션과 어려운 공정은 풀어놓고 자리를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신기간 동안 몇 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했을까? 열거해 보니 현장 8곳의 가구 또는 공간 제작 및 오픈, 3개의 제안서 기획설계를 진행했다. 추가로, 출산휴가 들어간 후 시공을 대비해 미리 실시설계를 완료했던 프로젝트는 2개였다. 나의 업무는 보통 미술관, 박물관, 전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공정을 다룬다. 회사에서 개발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소프트웨어)를 담을 공간과 집기를 만든다. 현장 답사와 실측을 시작으로 컴퓨터 작업툴로 공간을 그려내고, 여러 번의 기획 회의를 거쳐 콘셉트와 제작 방향을 도출한다. 최종적으로는 제작 공장에 발주 문서를 만들고 소통한다. 기획대로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공장에서 점검하고 설치하는 과정을 감리한다.
임신 중 마지막 현장
임신기간 중 마지막 현장 작업은 내 공간디자인 커리어에서 건당 제작비용이 가장 높은 프로젝트였다. 가구를 조합하는 개념으로 높이 4m가 넘는 공간을 풀었으니 단연 대미를 장식할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더 자리를 비우기 전에 공간을 시공하는 것까지 보고 싶었다. 실험적으로 풀었던 작업이기도 하고, 디자인부터 목업까지 애정을 갖고 진행했던 터라 실제의 스케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라봉이에게 매일매일 이야기 해주었다. "출산 예정일까지 무사히 엄마 뱃속에서 있다 만나자! 엄마 출근할 수 있게 도와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