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둔 봄날은 비교적 따뜻했다. 업무도 생각보다는 의연하게 잘 처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현장은 출산 예정일 약 한 달 전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어느덧 만삭이 되고 누가보아도 곧 출산을 앞둔 몸이 되었다. 나의 업무 특성상 현장 감리도 필요하고, 현장에 들어오기 전 집기를 공장에서 확인하는 일정이 있다. 몸은 무겁지만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기어코 내 눈으로 보겠다며 다녔다.
당시 공장 라운딩하며 올린 피드
사실 임신 중기까지는 혹시나 조산의 위험이 있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무사히 막달까지 버틴 것도 아이에게 고마운 일이었고, 주요 프로젝트의 현장 체크까지 가능했으니 사실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엄마에게 벌써효도를 한 거다.
마지막 현장 시공중!
마음은 긍정적이고 모든 것이 고마웠는데, 사실 임신 후기는 신체적으로 좀 힘든 시즌이긴 하다. 임신 35주가 되니 마치 골반 뼈가 못 버티겠다고 아우성치는 것 마냥 걷기가 힘들었다. 찾아보니 '환도 선다'라고 하기도 하던데, 난생처음 들어보는 명칭이었다. 여하튼 10분 만에 갈 거리를 20분 넘게 느릿느릿 다닐 수밖에 없었고 출근시간도 넉넉히 2시간 잡고 다녔다. 현장에 가서도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어딘가 뒤뚱뒤뚱하는 그런 모습이었을 거다. (ㅎ) 그래도 주치의는 운동할 겸 다니는 건 계속 추천했으니,다녀보려 했는데 정말이지 이건 말 못 할 고통이긴 하다. 묘사하자면, 뼈가 다 분리되어 살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허리로 가고 발을 질질 쓸고 다니는 형상이었다. 당시 회사가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사무공간이 2층방이어서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오래된 가옥을 리모델링한 곳이어서 계단도 좁고 높은 편이어서, 임신한 나를 배려해 회사에서는 손잡이도 설치해 주었다. 손잡이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임신 막달정도 되니 정말임산부들이사회에서 약자구나!라는 생각이 닿았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만삭이 되니 허들이 되어있었다. 배가 점점 나오면서 나의 허리 힘도 생겼겠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량이 부족했던 내게는 조금 더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막달에 부은 발..... 진짜 발이 무슨 풍선인 줄
그래도 이 또한 나의 운명이려니 하며 출근하고 나의 일을 마무리하는데 집중했다. 함께 손발을 맞춰온 공장 실장님도, 착착착 잘 만들어 주셨고 새로 온 신입 직원도 나의 업무를 받아 잘 진행해 주었다. 프로젝트도 어느 정도 일단락 되니 출산 3주 정도 남겨두었고, 정말이지 몸이 무거워짐을 느껴서 출산 휴가를 준비했다. 남은 프로젝트들 인수인계 문서, 설계를 체크하고 지난 작업 파일을 정리하며, 그간 수많은 프로젝트의 우여곡절들이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갔다.
내 커리어의 관점에서 임신기 10개월은, 정말 많은 프로젝트를 주체적으로 끝내고 진행했던지라 무척 의미가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열심히 저었고 몸 힘든 줄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잘 해낸 그런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