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같이 생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사람들의 표정과, 화려하지만 바스라져가는 건물들, 환하게 밝은데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하늘 그런 게 한 데 모인 느낌이다.
비행기에서 처음 본 러시아 모습. 뾰족한 나무가 듬성듬성하다.
1.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읽어주실 분....
큰 도시에 속한 공항임이 무색하게 정말로 무색무취하다. 기능적인 요소만 고려한 인테리어와 무뚝뚝한 금발의 직원들이 가득하다.
입국심사 직원은 단 한번도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서류를 뽑아서 내 여권에 끼운 뒤 창구의 작은 틈새로 여권을 돌려줬다.
여기저기 자동문이 가득한 남한에서 온 나는 입국심사대를 빠져나가는 개찰구가 자동으로 열리지 않아서 혹시 수속이 다 끝나지 않은 것인가 싶어 잠시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짧은 금발을 한 직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질렀다. “나가세요!” 뭐 이런 말이었겠지.
그런데 나보다 조금 뒤에 나오는 한 한국 남자도 나와 똑같이 문 앞에 서서 문이 저절로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직원은 아주 부드러운 손짓으로 나가는 쪽을 가리켰다. ㅎㅎㅎㅎ 그냥 내가 싫었던 모양이다.
독특하게 쓴 내 이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1시간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공항철도는 2시간에 한 대씩 온다고 하고 버스를 타기는 너무나 큰 모험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미리 택시를 예약했다.
그런데 내 통신사가 문제인지 아니면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지국이 문제인지, 공항에 떨어져서 택시 운전사에게 연락을 해야하는데 도통 인터넷이 먹통이었다. 설상가상 와이파이도 안 잡혔다. 거의 1시간을 도착장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운전사와 만났다.
키가 큰 운전사 언니는 난폭운전을 했다. 불곰국의 기개를 언니의 운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언니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보려 했으나 언니는 “노 잉글리쉬” 라고 대답했다.
아. 예약한 택시 운전사를 기다리는데 자꾸 곰처럼 생긴 아저씨가 러시아어로 말을 하면서 다가왔다. 택시 태울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는데 아무리 내가 미리 예약했다고 말을 해도 영어를 1도 못 알아들었다.
결국 아저씨는 세 번째 다가와서는 파파고를 돌려 한국어로 뜻을 전하려 애를 썼다. 그럼에도 의사소통이 안 됐다.
마지막에 아저씨는 화가 났는지 뭐라뭐라고 한 후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고 떠났다.
"너 그러다 여기서 한 시간 더 기다리게 될거야" 라는 악담.... ㅎㅎㅎ 왜 그것만 잘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2. 첫 에어비앤비 Mini Paris
빠리 느낌 물씬
내 생에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는 정말 다 쓰러져 가는 ㅁ 모양의 아파트먼트라서 좀 겁이 났다. 우리 집은 3층인데 올라오는 계단이 정말 영화 레옹에 나오는 오래된 파리 뒷골목 아파트같다.
낮에는 예쁘고 밤에는 무서운 우리집 앞
불도 잘 안 켜지고 집에 들어오려면 눌러야하는 자물쇠 키가 3개나 되는 게 더 무섭다. 하지만 내부는 끝내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에어비앤비 이름이 왜 미니 파리인지 모르겠지만, 들어와 보면 정말 인테리어가 파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동안 미니 파리에서 묵었던 관광객들이 남겨놓은 메모도 수두룩하다.
방충망이 없다
방충망이 없는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놀고 가끔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참새가 앉는다.
좋고 쓸쓸한 풍경
방문객들이 남겨놓은 메모
3. 아르바트 거리
아르바트 거리의 끝. 해변공원
바다로 이어져 있는 길쭉한 아르바트 거리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제 1 번화가다. 도착하자마자 피곤하기도 하고 로밍 먹통 문제도 해결되지 않아서 그냥 아르바트 거리 산책이나 하고 오기로 했다.
딱히 설명할 것은 없다. 사진들.
제 1 번화가라며...
들어가보고 싶었던 시가 라운지.
분수대에 얼굴을 쳐박고 물 마시는 비둘기
발해 관련 전시를 하고 있는 한 박물관
건물이 예쁘고 으슥하다
어떻게 찍어도 쓸쓸한 느낌
4. 수프라
현지인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핫 플레이스를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간판부터 핫플
무뚝뚝한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유일하게 친절했던 가게.물론 돈 앞에서 친절한 가게.
이쪽 동네 사람들은 양고기와 고수를 즐겨먹는다. 샤슬릭을 시켰는데 고수가 나왔다. 고수 러버인 나는 순식간에 주어진 고수를 해치우고 우리 테이블 담당 서버 마야에게 고수를 더 달라고 했다.
찬란한 고수
마야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너 정말 이걸 더 원해? 대단한데?"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고수를 잘 안 먹는 모양이다.
고수 많이 줘서 너무 좋아
우리나라 식당에 가서 고수를 더 달라고 하면 초장 종지에다가 몇 줄기 담아준다. 그러나 여기서는 찌개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릇에 듬뿍 담아준다. 러시아의 스케일.
조지아식 만두 힌깔리
아자리야식 하차뿌리
정말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밥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마야가 털모자를 씌우고 도망감.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만찬을 먹었는데도 우리 돈으로 6만5000원 정도 나왔다.
마야는 대놓고 팁에 대해 설명했다. 서비스가 엑설런트 했으면 10%, 좋았으면 5%, 그냥 그랬으면 0%를 달라고 했다. 고수를 많이 줘서 5% 줬다. "내 친구~" 이러면서 하이파이브까지 해 줬던, 그렇게 친절하던 마야의 표정이 무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