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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Jul 30. 2019

미용실 프리 라이프

2019.07.30.

머리카락에 펌이나 염색(염색은 원래 안했지만)을 안 한 지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수 김완선 씨의 폭탄 머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저번에 미용실에 갔을 때 나는 머리카락을 뿌리부터 볶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내 머리를 망칠까 겁이 많았던 미용실 언니는 머리카락을 소심하게 볶았다. 모양새가 좀 어정쩡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예뻤는데, 시간이 지나고 미용실 빨(?)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내 머리는 그냥 못생기게 푸석거리기만 하게 됐다.

영원한 로망으로 남을 사자머리


이제부터 펌을 절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잦은 펌으로 머릿결이 너무 상해서 당분간 머리카락을 좀 쉬게 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다 머리카락 길이가 많이 길어졌다. 겨우 컷트만 하자고 용산에 있는 단골 미용실까지 행차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동네 미용실 아무데나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 머리카락을 잘 아는 디자이너 찾는 일은 굉장히 어렵지 않나.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용산 미용실이었다.)


그래서 단호하고도 용감하게 집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엄마가 도와줬다. 뭐, 프랑스에서는 여자들이 자매끼리 서로 머리카락 잘라주고 그런다며? (여긴 한국이지만...)

겟 잇 뷰티에 나오는 분들은 다 금손이잖아요........................


쥐가 파먹은 것 같은 상태가 될까봐 걱정이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굳이 미용실을 가지 않아도 봐줄만 하게 버틸 수 있구나. 미용실은 꼭 가야만 하는 필수적인 곳이 아니었구나. 누군가에게는 그 역시 하나의 사치품목일 뿐이었겠구나.


1년 정도 미용실에 가지 않고 버티다보니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어마어마한 지출을 줄일 수 있다.(그 돈으로 다른 거 더 사는 게 함정)

남자 컷트보다 여자 컷트는 배로 비싸고, 펌을 한 번 하려면 기장에 따라 돈이 추가된다. 게다가 내 반곱슬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미용실 언니들은 꼭 클리닉 영양을 권한다. 그러면 30~40만 원은 그냥 깨지는 거다.

펌을 한 번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더 지저분해져서 4달에 한 번 정도는 꼭 가야 한다. 약간 한 번 타면 내릴 수 없는 화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저분한 마의 기간을 조금 견뎌내니 그냥 그럭저럭 사회에 낄 수 있을 모양새는 유지가 된다.

아니.. 이런 곳이?  (출처: 헤어지지말자 미용실)


또 다른 좋은 점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펌 약품 대신 헤어팩 같이 실질적으로 영양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자주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이어서 에센스나 팩을 안 바르면 한 가닥 한 가닥이 격렬하게 자기주장을 하게 된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실 언니들이 늘 ‘머릿결이 이런데 제발 헤어팩 좀 하라’며 잔소리를 했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어차피 펌 하면서 머릿결 신경을 왜 쓰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카락에 도움 되는 행위를 1도 안했다.

그런데 미용실을 안 갔더니 이거라도 안 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뭘 열심히 발라보고 씻어보고 관리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펌보다 이게 훨씬 도움 되지 않을까. 헤어팩 제품이야 기장 추가에 영양 추가하는 펌보다 훨씬 저렴하고 하나를 사면 여러 번 쓸 수 있다. 환경 파괴는 물론 내 건강에도 좋지 않음이 확실한 펌 약품 대신 친환경 제품을 찾아 쓰게 된다.


그간 써 온 파마약의 양을 생각하면 두피에서 괴물이 탄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출처: 헬스경향)


펌을 할 때보다 머리에 아무 것도 안한 지금의 머리 모양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다.

물론 펌을 하고 미용실 선생님이 드라이 해 준 머리의 예쁨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똥손인) 내가 말하는 것은 평소 유지되는 머리 모양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펌을 한 머리로 베개를 베고 자다 일어나거나, 잠시 어딘가에 머리를 기댔다가 일어날라 치면 머리 모양은 어김없이 망가져 있다. 한 쪽이 괴상하게 눌려서 영 그대로 외출하기에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고 드라이를 엄청 잘해서 컬을 다시 살릴 금손도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네.. 그게 저예요...    (출처: CL헤어살롱)

그런데 요즘은 자기 직전에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잠 든 후 아침에 일어나보면 머리 상태가 꽤 멀쩡하다! 두피 전문가들이 매번 방송 같은 데 나와서 “여러분, 머리는 저녁에 감아서 하루 동안의 노폐물을 씻어내리세요. 단, 머리를 너무 자주 감아도 안 좋습니다” 하는데, 과거의 나는 ‘그럼 자면서 눌린 머리는 어쩌란 말이야’ 하며 꼭 머리를 저녁과 아침에 두 번씩 감았다.

이제 보니 전문가들의 말은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아침 출근 준비 시간이 줄어들고, 샴푸와 린스도 더 오래 쓰고, 물도 아끼니 일석 여러조다.


단점이 있다면, 절대로 머릿결 좋다는 칭찬은 못 듣는다는 것이다. 화학 약품을 바르지 않고 과도한 열기도 쬐지 않은 지 꽤 된 내 반곱슬 머리카락들은 이제 너무도 건강하고 힘있게 고불고불하다. 그런 가닥들이 모여 마치 덤불 같은 머리 모양을 만든다.(여름에 살짝 많이 조금 엄청 덥다) 게다가 숱도 많아서 부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펌 없이 김완선 머리 가능할 지도.


미용실에서 만져준, 막 셋팅하고 나온 것 같은 그런 고퀄리티의 머리는 이런 미용실 프리 라이프로는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가까운 가족의 결혼식이라든지 회사 행사 같은 게 있을 때, 나의 덤불 머리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미용실 언니가 보고 싶다. 용산에 있는 미용실 언니는 머리를 할 때 괜히 이상한 사생활 질문을 하지 않아서 좋았고 그만큼 머리 스타일링 하는 데에 집중을 해 줘서 더 좋았다. 컷트도 예술이다.(미용실 추천 자신있게 해드릴 수 있어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자칫 내가 다른 미용실로 옮겨 간 건 아닐까 마음 쓰면 어떡하지. 언니, 잘 지내시나요. 제가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았단 것만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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