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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Nov 03. 2019

사람. 사람. 사람.

2019.11.3.

요새 더 급격히 사람이 싫어진다.
저번달에도 이맘때 그랬다가 생리가 시작됐는데 이번에도 그냥 호르몬의 농간이길 바라고 싶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 불안하다.

자기 할 말 할 때는 무시하다가 오디오 비는 게 싫으면 갑자기 발언권을 넘기는 사람.
누가 봐도 내가 해낸 일을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 덕인양 말하는 사람.
사과하지 않는 사람. 말이 너무 많은 사람. 물음표 살인마.
남의 기분은 묻지 않고 자기 즐거움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자신의 기준이 그리니치 표준시인 줄 아는 사람.
예의가 없는 사람. 목소리가 과하게 큰 사람. 남의 눈치를 너무 안 보는 사람.
이런 구체적인 일이 요즘의 나에겐 너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는 일조차 버겁다.
다른 사람의 기척과 체취와 소리를 느끼고 싶지 않다.
주말이면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고양이나 쓰다듬고 싶은데 일주일에 5일을 실내에 틀어박혀있던 동거인은 자꾸만 외출하자고 한다. 나가지 않으면 서운한 티를 너무 내서 내가 더 서운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 100번 중에 99번은 사람을 그린다.
대학 다닐 때 한 번 들었던 미대 수업에서 교수님은 내 그림을 보고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을 그리는 거"라고 말했다.
그 때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어쩌면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입이 있는데도 말이 없고 침묵하는 인간들을 종이 위에 그려서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아직도 버릇 못 고친 나는 매사와 매사람에게 혼신의 힘을 다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던 바보 천치 지질이같던 어릴 때의 트라우마를 다 못 벗어서다.
본인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완벽주의자같은, 나랑 비슷한 것 같은 지인에게 방금 "너무 혼신의 힘을 다 하진 마"라고 이야기 했는데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말했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도 안 나온다.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고 설명하기도 싫다. 그냥 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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