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탑

by 삶 집착 번뇌

대학 시절, 늘 과탑을 놓치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가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을 줄 알았다.

그의 눈빛에는 늘 *“너희와 나는 달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고,

그 자신감은 때로 자만처럼 보여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최근 들은 소식은 예상 밖이었다.

취업이 풀리지 않아 과일 가게에서 일하다가 트럭에 치여 2년간 재활을 했고,

지금도 집에서 별다른 일 없이 지낸다고 했다.


나는 공대 시절 상위 5퍼센트 안에 들었다.

시험기간이 아니면 혼자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 갔고,

다른 친구들이 기계기사 공부에 몰두할 때

나는 *“진짜 경쟁력은 자격증이 아니라 언어다”*라는 생각으로

외국어 공부에 시간을 쏟았다.


점수보다는 실제로 쓸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공부했고,

결국 영어와 중국어를 완성했다.

그 덕분에 일본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익혀졌다.


20대의 나는 늘 경쟁을 연료로 삼았다.

공부든 운동이든, 노는 일이든 —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30대, 회사에 다니며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사내 정치에 밀려 꼴찌가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꼴찌여도 괜찮다는 걸.

자존심만 내려놓으면,

삶은 의외로 잘 흘러간다는 걸.


그 깨달음 덕분에 나는 모든 걸 비우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좋은 대학, 대기업 출신이라는 타이틀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이제는 나를 묶어두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1등이 아니라도, 꼴찌로 돌아가더라도 —

내 안이 단단하다면 흔들릴 이유는 없다는 걸.

아마 그게, 진짜 성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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