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by 삶 집착 번뇌

사업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을 품고 대기업을 퇴사하던 시기였다.

준비 없이 던졌지만, 당시 연간 120권이 넘는 독서량이

나에게 “넌 이미 준비된 사람이다.” 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매정했다.

창업박람회를 돌아다니며 무자본, 저자본 창업이라는 문구에 매달렸고,

크로스핏 체육관부터 건물 청소업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구매대행 대량등록 프로그램을 600만원에 구매해

4개월 동안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월 5만원 벌 때도 있었고, 겨우 80만원까지 올랐을 즈음

스마트스토어에서 가짜 상품 판매라는 사유로 영구정지를 당했다.


그때 처음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울렸다.


수입은 다시 0원.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반자동, 수동 방식까지 시도했지만

하면 할수록 번아웃이 몸을 잠식했고,

지금 돌아보면 단순한 문제였다.


> 그때 파트타임 직원 한 명만 있었어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사업가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한다.”

라는 이상한 고집을 신념처럼 믿고 있었다.


실패는 이어졌다.


무겁고 비싼 제품이어야 한다는 강의를 듣고 가구 구매대행 → 실패


이어서 쥬얼리 구매대행 → 실패



결국 사업을 접고 반도체 기술영업 회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배운 것은 기술도, 카탈로그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딱 하나였다.


> “사업가는 명함이 있어야 한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다시 마음이 들끓었다.


퇴사 후, 도서관에 숨어 살며

다음 방향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무역업 창업 책을 발견했다.


첫 몇 장을 넘기던 순간,

가슴이 뛰었다.


> “그래. 이거다.”




나는 4개 국어를 했고,

해외 시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에너지가 솟았다.

그래서 책을 덮자마자

명함을 만들고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그 다음은 단순했다.

계획도 전략도 없이

그저 명함을 들고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체육관 관장님이

바닥재 수입을 의뢰했다.

첫 거래는 -40만원 손해였지만

600만원 규모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 그건 시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법도, 마케팅을 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가장 쉬운 사업이라고 생각한

폐구리(스크랩) 수입을 선택했다.


단순해 보였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사기를 당했고,

빚을 떠안았고,

다시 무너졌다.


그래도 끝은 아니었다.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이번엔 같은 기술영업이었지만

업무 중 **콜드콜(전화영업)**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배웠다.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말


관계를 거래로 바꾸는 법


단번에 신뢰를 잃는 말과, 얻는 말


그리고 영업은 설득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것



그 경험이 나를 다듬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실패했던 이유가 선명해졌다.


그리고 결국, 다시 나왔다.


기술영업 경험은

나를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업가로 만들었고,

그 이후 마케팅을 익히며

전화를 하지 않아도 매출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계획도, 논리도 없었다.

그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버텨낸

미친 여정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절망들 위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요즘은…

한 달에 5만원 벌며 느꼈던 절망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공허가 찾아온다.


어떤 철학자는 말했다.


> “삶은 고통과 권태가 번갈아 이어지는 구조다.”




또 다른 철학자는 말했다.


>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추락한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며 그 고독을 버티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공허조차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는

조용한 전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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