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철학과에 다닌다며 자신이 무엇을 배우는지, 철학 공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에게 소크라테스처럼 되묻듯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학문적 철학이란 무엇인가요? 강단이 아닌,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존의 철학, 나를 위해 몸을 쓰는 사람들이 느낄 철학은 무엇일까요?” 하지만 그는 단지 자신의 전공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곧바로 다른 관점들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이건 이렇게도 들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병렬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연인들에게 “너는 왜 항상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학생의 댓글을 보고 감명받았다는 마음보다, 먼저 분석과 비판이 앞섰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지만, 나는 그것을 차갑게 되받아친 셈이었다.
비판적 사고는 분명 장점이 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삶의 통찰을 가능하게 하고, 지적 능력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만들고, 사회 속에서는 비주류가 되기 쉽다. 역사 속 철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도 이런 과잉 사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특히 니체를 떠올린다. 끊임없는 병렬적 사고와 사유의 과잉이 결국 그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니체를 반면교사 삼아, 사고를 지탱할 몸을 단련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비판적 사고는 혼자 있을 때는 훌륭한 동반자지만, 타인과 함께할 때는 종종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강도를 견디지 못하거나 애초에 그렇게 사고하지 않는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혼자가 된 나는 다시 비판적 사고로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 결국 나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깊은 사유의 방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판적 사고는 나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나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날카로움’만큼이나 ‘따뜻함’을 고민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찌르지 않는 방식. 논리를 세우는 만큼 관계를 지키는 법.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 내가 배워야 할 진짜 철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