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오한과 발열이 번갈아 찾아와 떨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한밤중에 깨어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이 정도면 응급실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다시 잠이 들었다.
언젠가 아플 때는 늘 누군가 옆에 있었다. 물을 건네주던 사람, 미음을 끓여주던 사람, 그냥 옆에서 숨소리로 위로가 되던 사람.
하지만 이제 혼자 아픈 것도 익숙해진 지 다섯 달째다.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기어 올라가 가장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덮자마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일을 다 해도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관계의 진짜 무게가 보인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보다, 아플 때 문 하나 열어주는 사람이 훨씬 소중하게 느껴진다.
누워서 문득 생각했다.
‘그냥 나에게 호감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중 아무나 잡고 결혼하는 게 맞을까?’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이 흔들리는 이유는, 결국 외로움이 몸속 깊이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 뜨겁고 복잡한 감정의 교차점이지만, 외로움 속에서는 단순해진다.
그저 나를 챙겨주는 사람,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줄 사람.
그 사람 하나면 충분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어제는 정말 너무 떨어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은 평온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은 결국 함께 아파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행복할 때는 누구나 곁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플 때 옆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진짜 동반자다.
아침이 되자 열이 조금 가라앉았다.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며 방 안의 공기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중요한 걸까,
아플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중요한 걸까.
사랑의 기준은 여전히 헷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혼자서 이 질문을 품고 있는 지금,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