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 지갑

나의 청춘을 함께한 추억

by 가비야

요즘 외출 준비는 세상 간편하다.
가방 속에 이것저것 챙길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들면 끝이다.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스마트폰만 갖다 대면 결제가 되니 굳이 무거운 지갑을 들고 다닐 이유가 사라졌다. 지갑이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지갑은 외출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자 자존심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지갑은 단순한 돈 주머니 그 이상이었다.
손에 꽉 차는 장지갑부터 앙증맞은 중지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지갑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큰맘 먹고 구입했다.
그 지갑을 소중하게 들고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지갑은 그 사람의 취향을 보여주는 패션의 완성이고 가장 소중한 소장품이었다.

지갑 속을 채우던 것들은 또 얼마나 화려했던가.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과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투명한 칸을 장식했고 영화를 보고 남은 티켓이나 다시 가고 싶은 맛집이나 카페의 명함이 가득했다.
열 번을 찍으면 커피 한 잔이 공짜인 쿠폰도 가득했다. 도장을 차곡차곡 모으던 소소한 재미도 지갑 속에 있었다.

지갑의 두께는 곧 내 일상의 풍요로움이었고 그 안에는 나의 취향과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갑의 자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카드가 현금을 대신하더니 이제는 그 카드마저 스마트폰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지갑은 점점 얇아지다 못해 이제는 아예 가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비 오는 날의 우산처럼 필요할 때만 찾던 존재조차 아니게 된 것이다.

지금 나의 예전 지갑들은 화장대 서랍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한때는 매일같이 내 손때를 묻히며 세상 구경을 하던 녀석들이다. 서랍을 열어 낡은 지갑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가죽의 모서리는 닳아 있고 색은 바랬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잊고 지냈던 나의 청춘이 숨 쉬고 있다. 지갑을 열면 그때 그 시절의 향기와 설렘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묵직한 지갑의 감촉이 그립기도 하다. 사진 한 장을 고심해서 끼워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던 그 아날로그적인 온기 말이다. 비록 세상은 디지털로 변했지만 서랍 속 지갑에 담긴 추억만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비워진 서랍이 아니라 추억으로 꽉 찬 서랍을 보며 미소 짓는다.
오늘 내 손에는 스마트폰뿐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묵직한 지갑 하나를 소중히 품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