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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달 Dec 10. 2024

말없이 고요한 겨울로 접어든 숲

관악구 국사봉 단풍나무길

언제나 그 자리에.


봉천역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가파른 길을 올라 당곡고등학교 정문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당곡고등학교 정문 옆길로 이따금씩 산에 오르곤 했었는데 찾아오지 않은 십여 년의 시간, 진입로 옆에 사는 은행나무는 그대로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사람이 건드리지 않는 한 그대로 아니던가.

자연을 닮은  삶.


같은 하늘 같은 습설이 내렸으니 숲도 다르지 않았다. 나뭇가지들이 눈의 무게에 꺾고 단풍 들기도 전에 쓰러졌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는 자연이나 삶이나 매한가지다. 모른다는 점도 그렇지만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대면해야 하고, 당한다고 해야 하나,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점이 같다. 우리가 오는 것을 막고 가는 것을 붙잡을 힘은 없으니 순응하는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게 확실하다.

자연은 경이로운 예술가.


사람이 앉아야 할 벤치에 눈이 내려앉고 그 위에 단풍잎이 흩날려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다. 백설기에 올린 단풍고명 같기도 하고 이불솜 위에 얹은 붉은 조각 같기도 하다.

나무계단도 층층이 눈 위에 단풍이 포개진 작품이다. 자연은 지루하지 않게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드는 경이로운 예술가다.

화끈하게 내린 2024년 첫눈이 응달에는 남아있었다. 단풍이 충분히 들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붉어지려는 걸까. 지금 이대로 지고 말건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물기 머금어 예뻐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만세' 눈사람.


누가 저렇게 예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도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눈사람의 별모양의 단풍눈이 어주니 마음도 살살 녹는다. 순간 동심의 세계로 곧장 진입하고 만다. 동상에 걸린 줄도 모르고 눈사람을 굴리며 놀던 기억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고 만다.

고요와 여운이 가득한 길.


단풍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7분 정도 걸으면 끝인 짧은 길이지만 여운이 깊다.

처참하게 쓰러지다니.


잎을 떨군 나무들은 그래도 덜 상처를 입었는데 잎이 촘촘한 침엽수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구나. 꼿꼿한 성품은 부러지거나 꺾이기 쉬운 법. 한겨울 산을 덜 쓸쓸하게 만들어 주는 '상록수'에게 이런 시련이 있었구나! 뿌리 깊은 나무여도 땅과 수직이 아니라 비탈에 살면 아무래도 무너지기 쉽겠지, 내 생각에는 그랬다.

눈이 와서 미끄럽기도 하고 질척거리기도 해서 등산화를 신고 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짧은 거리지만 눈

쌓인 산은 조심스럽다. 아쉬웠지만 곧바로 단풍나무길을 지나 국사봉중학교로 내려왔다.



가을이여, 안녕.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나무가 앙상해지고 여백이 많아지면 숲은 깊은 고요에 잠기겠지. 겨울산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눈 내린 산에는 가지 힘들겠지. 내 몸도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가을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그래도 둘레길 정도에 '만족'하며 혼자 말고 '같이' '살살' 다니는 건 괜찮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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