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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달 Dec 17. 2024

걸어서 명동성당으로

서울로 7017에서 남대문 시장 지나 명동성당까지

버스로 두 정거장은 더 가야 하는데 서울역에서 내려버렸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순간의 결정이었다. 이 코스로 걸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오래전 일이고 지난 주일은 바람 불어 쌀쌀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시작된 걷기였다.


걷자! 바람 불면 좀 어때, 명동성당까지 3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데,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속으로 말하고는. 혼자라서 내 맘대로 결정하고 옮기면 되니까 혼자라서 좋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오전에 놓쳤으니 낮미사를 하기 좋은 곳이 어딜까, 아 참 명동성당 4시에 미사가 있었지, 떠올라줘서 고마웠다. 입력되었어도 제때 인출되지 않 아무짝에 쓸모없던 일이 허다했으니까.

서울로 7017

서울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서울로 7017이다. 시야가 한층 높아지니 하늘이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바람 불고 추울수록 하늘은 더 파래지는 걸 보면, 세상에 다 나쁘다거나 다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뒤섞여 세상살이가 파란만장하면서도 한편 흥미진진한 거겠지.

서울스퀘어에서 서울로 로

웬 바람이 이리 부나, 일단 저기 쉼터 들어가서 헝클어진 머라 칼과 옷매무새를 정돈하자, 라며 다급히 들어간 쉼터에 노부부가 앉아있었다. 거기엔 피아노도 있었다. 좁은 공간에 침범한 것 같아 살짝 목례를 하고 서 있는데 피아노 칠 수 있으면 한번 쳐보라, 하신다. 어르신의 말에 힘입어 고향의 봄 한 곡조 뽑았더니 이번에는 피아노 치는 사람은 다 이뻐 보인다, 라며 웃으신다. 노 부부는 노란 의자에 앉고 나는 피아노를 등지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런 추운 날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으니. 예전에 서부역 지겟꾼들이 먹던 음식점에서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소화시킬 겸 걸어왔고, 여기서 잠깐 쉬다가 남대문 시장 가서 호떡 하나 사 먹고 버스 타고 집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중림동 다른 노포도 소개해주신 호탕하신 어르신한테 궁금해져서 물었다. 사시면서 어떤 일이 가장 좋았고 어떤 일이 가장 힘드셨느냐고. 뜬금없는 내 질문에 어르신이 망설임 없이 말씀하셨다. 자신만의 정리된 답을 품고 있다는 건 숱한 고민과 갈등의 시간 속에서 건져낸 살아갈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는 귀담아 들었다.


"살아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고. 그게 제일 힘들지. 그런 게 한 30%는 되는 것 같아, 누구나 그 정도 힘듦을 견디고 사는 거더라고. 어쩌겠어, 나만 힘든 게 아니더라고."

둥근모양의 쉼터


어쩌다가 버스에서 예정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알아서 내렸는지 이유가 밝혀졌다. 노부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구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필연 같은 일이 아닌가.








나무들은 겨울채비를 끝내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잎이 떨어진 가지 끝에 내년을 책임지기 위해 부드러운 솜털로 감싼 겨울눈은 새 봄을 기약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나무들을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온몸에 가시를 돋아 바짝 긴장한 것 같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음나무라고 이름이 적혀있어서 적힌 대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그냥 나무라고 퉁 치지 않아도 되니 나는 나무에 대한 예의를 갖춘 셈이다. 누가 나더러 사람, 여자, 아줌마로 퉁 치면 정말 싫은 것처럼 나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무야, 겨울나무야.






불경기에도 연말은 다가오고 한 해가 소멸되기 전 상인들은 대목을 바랄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규모만큼 사람들도 많았는데 과연 지갑을 크게 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모자를 하나 사는 것으로 예정에 없는 지출을 했다. 모자를 놓고 온 게 화근이었는데 각양각색의 모자가 쌓여있는 가게 앞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2000원을 깎아주었는데, 말없이 현찰을 내서 그랬는지 봉헌금 내기 위해 오만 원을 허는 거라고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고마웠다. 추운 날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내가 어찌 아랴. 단지 많이 파세요,라는 인사가 곧 마음이다.

곧, 성탄이다

매번 지나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우표박물관 앞을 지났다. 근대 우편제도의 창시자 홍영식. 한국우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개화기 인물의 동상이 의지에 차 보였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한 번쯤 데리고 왔을 법한 곳이다. 애들 키울 때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돈은 없고 시간은 많으니 아이들하고 박물관, 야외체험현장 여기저기를 다녔었는데..... 근방의 홍콩상하이 은행 프로그램, 한국은행 방학프로그램도 생각난다. 무료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애들 핑계 대고 같이 놀러 다니던 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겨울우체국 앞에서






명동성당 1898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을 씻은 다음 성전으로 올라갔다. 1898년에 완공된 뾰족 지붕의 성당 건물을 올려다볼 때면 그 옛날 갓 쓰고 도포입은 선비가 쯧쯧 혀를 차고 지나갔다는 말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 혼자 배시시 웃게 된다.


올해 1898 광장에는 스승예수의 제자 수녀회에서 제작한 <구원을 위한 가득한 은총과 완전한 비움>이라는 작품이 선보였다. 열흘만 지나면 비어있는 구유에 아기예수가 탄생하실 것이다.

1898 지하 광장, 비어있는 구유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신다."


뾰족 지붕 명동성당

대림 제3주일의 제1독서에 나오는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제대 위 분홍 꽃과 분홍 초와 분홍 제의를 입고 강론대에 선 외국인 신부님까지 모든 것에 기뻐하라, 나더러 들으라는 말이다. 요즘 어려움이 많은 때에 어떻게 기뻐하느냐, 그 방법은 주님께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당연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잘못,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 분홍색 대림초 밝힘

걸어오길 정말 잘했다.

걷고 나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걸으면 온몸에 붙어있던 잡생각들이 바람 타고 날아가고 몸에 붙어있던 상념들은 생선비늘 떨어지듯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걸으면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미사의 은총 덕분에 마음속  그늘에서 벗어나 환한 빛을 통과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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