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주차부터 시작된 입덧은 지독하게도 막달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입덧’이란 단어만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남들에 비해 더 유난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는 헛구역질을 했고, 책상 위에는 늘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고, 회사 로비 한편에서 쪼그려 누워있기도 했다. 입덧약이 있기는 했지만, 잠깐의 위안일 뿐이었다. 지금은 영웅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날들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일에 집중하며 정신을 딴 데로 쏟고자 결국 막달까지 일을 했다.
내가 체력이 없지 깡이 없나.
3n년을 깡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해 온 나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은 괜한 욕심도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할 수 있다!”를 외치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버텼다는 말 말고는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출산이 예정이던 달의 첫날, 나는 휴직에 들어갔다.
‘지방공무원법 제63조제2항제4호에 따라 휴직을 명함.’
와, 드디어 휴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