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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r 19. 2019

폭력적인 일기와 불안의 책

일기를 쓰는 것

일기를 써야겠다, 라고 일부러 결심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매일 작은 메모를 남기는 것은 버릇이다. 거창하지는 않다. 캘린더 네모네모에 먹은 음식과 본 영화만 적어두는 날도 많다. 요새는 줄글을 쓰긴 한다. 역시 매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메모 같은 것들이다. 어릴 때는 어떤 이유에서든 일기를 정말 많이 썼고 지금은 그 일기를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다시 펼쳐보면 기가 막히다못해 어이가 없다. 그 일기엔 내가 먹었던 아이스크림 포장지까지 붙어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식이장애를 겪던 시절이었다. 구글캘린더나 아이캘린더 같은 것을 쓰는 것보다는 종이 스케줄러를 쓰는 것을 좋아했듯이 지금도 달력에 그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었는지 메모해두고 있다. ㅇ월 ㅇ일의 네모네모에는 김밥, 떡볶이, 사바하, 라고 적어놓는 식이다. 곱창, 삼겹살, 치킨, 주먹왕 랄프, 한강, 강원도, 양평, 이렇게 단어를 나열한다. 


줄글 일기는 세 줄이 될 때도 있고 세 페이지가 될 때도 있다.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일기의 절대적인 양은 늘어나고 밀도도 높아진다. 기분이 좋지 않을수록 일기에 쓸 것들이 많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안한 시기에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일기를 쓰는 근본적인 이유는 난 오늘 이것을 해서 참 잘했다, 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약 그렇다면 그런 말은 SNS용이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이다, 그말인즉슨 초등학생 때 선생님에게 검사받기 위해 썼던 일기장, 즉 SNS의 초기적 형태로서의 일기와 나만의 일기를 구분하여 쓰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빨래처럼 널어놓기 위한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몇 해 동안이나 같은 문장과 같은 내용의 같은 일기를 쓰고 있다. 


비슷한 내용이 날짜만 달리 해서 반복되기 때문에, 왜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거나 적어도 정말 진정으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한심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왜 나는 똑같은 말투에 상처를 입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계속하여 만나고 있는가? 밤에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지루해 미쳐버릴 것 같은 나머지 당장 어디로든 도망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샌프란시스코와 엘에이와 파리와 로마와 밀라노와 팔레르모와 리스본행 비행기표를 찾아보면서 또 정작 여기에 돌아와 있는가. 도망갈 방법이 그렇게 많았는데 난 유학을 갔다 돌아왔고 해외 역군이 되었다가도 돌아왔고 지금도 그 많은 길들을 놔두고 그냥 여기에 못박여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너무 낡고 무기력하고 마모된 정신이 되어버린 나머지, 그냥 일기를 쓰는 일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산적인 일이며,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질리지 않고 해온 몇 안 되는 희귀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지 좋은 드라마터그나 심지어 시인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보면서 내 스스로 자평한 대로, 그리고 대학 교수님들이 예언한 대로 "작가가 되지 못해 절망하여 칼 같은 혀를 내두르는 평론가"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어떤 형태로든 쓰려고, 그렇게 정신과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오늘과 내일을 구분짓고 매일매일의 프레임을 만드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불안의 책>이다(<안네의 일기>는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진 소설이라기보다는 구전문학과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의 나열이고, 그래서 나는 늘 페르난도 페소아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번잡하고 복잡한 리스본의 사무소에서 군무하는 회사원인 동시에 진정으로 고독한, 외로운, 쓸쓸한, 작가였다. 글자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글자에 숨결을 불어넣고 생명체로 만들어 대화를 나누었던, 여러 개의 필명으로 여러 종류의 글을 쓰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듯 시늉하였던 그의 마음가짐을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안의 책>을 계속 쓰려고 한다. 


1장과 2장, 3장과 4장이 변화하지 않는 책이 될 것이다. 매일 불안하고 초조하고 외로운, 한편으로는 그만큼 광폭하고 적나라한 책이 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천한 지옥의 노동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 연옥의 생활이며,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지고한 천국의 예술이라는 단테 같은 생각을 언제나 해 왔었다. 일기쓰기만 두고 보면,  글은 나에게 예술일 수 없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활동일 수 없다. 괴물을 만드는 행동에 가깝다. 그러나 페소아가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고 통탄했듯이, 나도 나라는 자아가 흩어지고 옅어진 후 그 많은 조각을 한줄에 꿰을 수 있는 노동은 글쓰기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춤은 순간인데 글은 여기 있다. 그림은 기록이지만 글은 망상이다. 음악은 숭고한데 글은 날것이다. 날것의 망상,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함꼐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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