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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비 Mar 04. 2024

[24번째월요일]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다

그 겨울의 마지막 생각

“언니, 나 30만 원만 빌려주면 안 돼?”


몇 년 전에 한창 내가 음료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막 사업을 시작한 30대 초반의 N을 알게 되었다. 귀엽고 친근한 외모에 다정한 성격의 N과 당시 나는 금세 친해졌었는데, 한 동안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만나게 되었다.


N의 사업은 여전히 어려운 듯 보였고, 그녀의 경제적 상황은 생각보다 나빴다. 안타까운 마음에, N의 제품을 하나 사주기도 하였다. 그게 가장 바르게 그녀를 돕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를 다시 만나 하나 느낀 것이 있는데, 그녀는 큰 꿈만 있고, 매일 파이팅만 하지, 막상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그 이외의 일은 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사회적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미안하다, 나 오늘 오전에 탈탈 끌어 모아서 베트남에 다 보냈다. 이제 이번달은 더 이상 내가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없네.”


누군가는 나를 비정한 인간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어렵다면 도울 수 있는 돈이 30만 원일지도 모른다. 안 받아도 그만인, 큰돈도 아니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더욱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봤다. 그녀에게 30만 원쯤은 충분히 벌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으리라. 그녀는 그 사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30만 원은 큰돈이 아니니 어떻게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겠지. 불 보듯 뻔한 그녀의 모습이 잠시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사채업자 아는 사람 있으면 나 좀 소개해 주면 안 돼?”

“사채업자? 너 담보는 있어? 어떻게 갚을 건데?”

“아르바이트해서…”

“너 그거 알아야 해, 너한테 돈 빌려줄 사채업자도 난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도 하지 못한 알바를 사채를 갚기 위해서 한다고?”


‘아, 정말 철없구나…’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매몰차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예전과 달리 요사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호구’라는 말이 있다. 바보 같이 어수룩해서 이용만 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문제는 작금의 시대에는 똑똑한 사람들도 종종 ‘호구’가 된다는 것이다. 호의를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일을 계속 당하다 보면, 타인에게 ‘호의’를 가진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크지도 않은 30만 원 때문에 고민을 하고 갈등을 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찝찝한 그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호구’가 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곧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그런 개념 말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보고, 듣고, 겪으며 그들의 마음속에도 나처럼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라나 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현상들은 남을 돕는 행위 자체를 인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꼰대 모드로 들어가서 예전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도덕시간에도 배웠듯이 우리는 자라면서 당연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요새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는 종종 핀잔이며 욕이다. 남에게 딱 이용당하기 좋다는 말이다. 너 참 어리숙하다는 말이다. 세상물정을 제대로 모르는 바보라는 말이다. 되려 '나쁜 사람' 이 '똑똑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도 종종 있다.




나의 과거를 살며시 되짚어 본다. 

나도 저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당시에 정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그들 중 몇몇의 은혜는 아직 다 갚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이 ‘호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기 마음이 은근히 무거워진다. 그들은 왜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나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 내가 호의를 기꺼이 베풀고 있는지를…


개인적으로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각박한 곳이라고 하던데… 가장 불행한 사람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종종 뉴스에 나온다. 아마도 한국엔 ‘호구’가 너무 없기 때문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ㅎㅎㅎ


중년의 나이가 훌쩍 지나고, 이제 세상 살 정도의 나만의 원칙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만 배웠지, 무엇이 ‘좋은 사람’이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 ‘좋은 사람’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생겼다.


내가 회사를 뛰쳐나와 사업하는 내내 좋을 때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나, 지지와 믿음을 멈추지 않았던 나의 베프 “J”가 생각난다. 평소의 그녀의 모습도 헤프지 않으며, 진중하고 냉정한 듯 하지만 정이 많아 사실 No라는 이야기를 잘 못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장점은 꾸준함과 책임감. 


“J, 넌 참 좋은 사람이야.”

“? 갑자기 뜬금없이… 오글거린다.”


결국 누군가에게 호의를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과 똑같다. 이 믿음은 사실 겪어 보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더 무섭게 말하자면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호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믿음을 준다는 것,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좋은 사람’의 의미는 타인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어디까지 믿음을 줄 수 있느냐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의 잣대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믿음을 준다는 것, 신뢰를 한다는 것 또한 학습되는 것인데… 타인에게 믿음을 줘 보지 않은 사람이, 상대를 신뢰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N에 대한 나의 행동은 그냥 단순히 너그럽지 못한 옹졸한 행동이었을까? 와~~, 중년이 되어도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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