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투자와 자생의 갈림길
반쪽, 내 것도 아닌데, 내 것 같았다.
사실 어떤 마음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냐는 질문에 매번 대답하기 귀찮았다.
그저 ‘나’라고 소개하며 살아갔다. 어리석었다.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분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브랜드와 나를 같은 존재로 보았다. 나 역시 그 시선에 기대어 살았다. 브랜드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었고, 브랜드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였다. 그렇게 나와 브랜드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그 결과, 나는 일이라는 껍질 안에서 나를 소진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모든 것을 짊어졌다.
번아웃은 몇 번이고 찾아왔지만, 매번 책임감을 핑계로 그것을 묵살했다. 그렇게 나를 혹사시키는 경험을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지 깨달았을 땐, 이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내가 만든 윙크는 론칭한 지 1년 즈음에 ‘여럿이서 2~3년을 공들여 만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얼핏 칭찬 같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내 현실을 더 선명히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몇 분이 계신지 몰라서요’라며 홈오피스로 과자를 박스 한가득 보내곤 했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어떻게 이걸 다 혼자 하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자동응답기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할 만해요."
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에너지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할 수 있다.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어떤 마음으로 브랜드를 운영했냐고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나를 잃어가면서도, 끝없이 그 경계를 지키려 애썼던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이 옳았는지조차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런 경험조차 긍정적으로 재해석해 글로 풀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다.
투자와 자생의
갈림길에서 투자와
자생의 갈림길에서
투자와 자생의 갈림길에서
투자란, 화려한 약속으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치열한 현실과 나를 돌아보는 긴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30년 가까이 문구시장에서 버텨온 한 대표님의 투자를 받았다. 그것은 겸손을 배우는 경험이었다.
스스로 해낸 것만으로는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단순히 자금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기대가 함께 따라왔다. 그 기대는 무겁게 느껴졌고, 때로는 나를 옥죄었다. 내가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들, 증명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서 쉼 없이 떠올랐다.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많은 상호작용과 타협이 필요했다. 소통이 되지 않는 투자관계는 공생에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애써 손발을 맞춰야지만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대표님이 말하길,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이나 투자 없이 사업을 키우는 사람들이 더 대단한 거예요.”
그 말이 내게는 묘하게 위로와 경고처럼 들렸다. 자생하는 사업, 온전히 내 힘으로 일군 브랜드가 가진 가치는 정말 크다.
그만큼 버티는 데 따르는 희생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