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물

당신의 눈물 내가 닦아줄게요

by 개저씨

신혼 때의 일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한 그때..


회사 업무의 특성상 해외출장이 잦았던 나는 거의 매달 일주일 이상 해외에 나갔고 작년 9월 초에도 9일 동안이나 출장을 가게 되었다. 특히 9월은 일주년 결혼기념일이 있던 달로 아내를 혼자 내버려 두게 된 나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아내 또한 집에 혼자 있기 싫다고 안 가면 안 되겠냐고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출장 3일째 되던 날, 바쁘게 일하다가 휴대폰을 보니 아내한테서 문자 메시지가 와있었다. ‘오빠, 나 임신한 거 같아.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 사서 검사했더니 임신이래’라고 쓰여있었다. 순간, 기쁘고 신기하고 나도 이제 드디어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벌써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서른여섯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로서는 결혼 일 년 만의 아내 임신소식에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 한 기분이었다. 당장 아내에게 전화했고 우리는 부모가 된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한참 동안 얘기를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아내가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고 작고 동그란 아기집이 마냥 신기해서 아내를 꼭 안으며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육아책도 이것저것 주문하고 미래의 아기 얘기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아내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도 했는데 다른 임산부와 남편들의 모습을 보니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되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나고 또 다른 출장이 있어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임신까지 한 아내를 두고 또다시 출장이라니.. 애써 아내를 위로하고 다시 출장길에 올랐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며칠 만에 현지에서 아내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그런데, 아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사진을 찍고 아기 심장 뛰는 소리도 들었는데 아기집 모양이 정상이 아니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곁에 꼭 있어줘야 할 때에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며칠만 기다리면 곧 갈 테니 최대한 안정을 취하고 있으라고 아내를 위로했다. 그렇게 길기만 했던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많이 놀랐을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독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아기집 모양이 이상했다가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건강한 아기를 낳은 임산부들도 있었기에 다 괜찮아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이틀 후인 일요일 오후에 누워있던 아내가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하혈을 한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아내를 데리고 서둘러 산부인과로 갔다. 큰 병원에 갔더니 오래 기다려야 해서 우여곡절 끝에 정기검진을 받던 작은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초음파 사진을 찍고 검사를 했는데 의사 선생님 표정이 어두웠고 긴 설명 끝에 ‘안타깝지만 유산이 되었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말았다. 아내가 나를 돌아보는데 아내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찌나 미어지던지..


임신 두 달 만에 유산이 된 것이다. 수술을 해야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슬퍼하는 아내를 겨우 다독이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출장을 가지 않고 아내 곁에 계속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내한테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등등.. 수술실 밖 복도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앞에 있는 신생아실로 남자 한 명이 와서 유리벽 너머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다정하게 손짓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산이 안되었으면 내 아기도 저렇게 기쁘게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간호사가 병실로 안내해서 들어갔다. 수면마취에서 덜 깨어난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서 손을 꼭 잡아주니 마취에서 덜 깬 채로 하는 말이 ‘오빠, 나 영양제 맞았어. 7만 원’ 이러는 것이다. 평소에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 나한테 영양제 링거 맞은 것이 미안해서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아내가 불쌍하고 미안하던지 ‘괜찮아, 바보야’ 하며 아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 순간 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아내의 두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가져다가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고 또 내 눈물도 닦고 그렇게 30분은 지나간 듯하다. 아내가 마취에서 깨서 한참을 다독이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돼서 아내를 부축하고 병원을 나왔다.


유산이 된 후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는데 한 번은 퇴근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아내가 조용히 일어나서 다른 방으로 가는 것이었다. 방으로 따라가 봤더니 아내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우는 아내를 보고 너무 불쌍해서 둘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렇게라도 아내의 텅 빈 마음을 채워주고 싶었다. 새 생명에 대한 기쁨과 설렘, 뜻하지 않은 유산, 그리고 무너져내리는 절망과 깊은 슬픔.. 한 달 동안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옆에 있는 아내한테 한없이 미안하고, 또 꿋꿋하게 버텨내줘서 고맙다. 심성 고운 아내는 내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이쁘고 소중한 여자다.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가끔 그날 마음속으로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안 좋았던 일은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생명이 다시 찾아와 주길 온 마음을 다해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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