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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집사가 될 줄은 나도 몰랐지

by Slowlifer

초록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으로 들으로 캠핑 다니는 걸 좋아한다. 초록초록한 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냥 좋았다. 그래서 자꾸만 주말이면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초록을 찾아다녔던 모양이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쯤으로 생각해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지금껏 쭈욱 초록이들로부터 위로를 받아 왔나 보다.


그렇다고 초록을 집 안으로 들여올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나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편이라 식물은 산에 들에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스스로 선을 그어왔던 모양이다. 늘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아마도 집 안에 들이는 식물은 그때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한편으론 화분 가꾸기, 식물 키우기는 50대 이상의 고상한 어머님들, 특히 주부님들의 취미라고 생각해 왔던 고정관념도 있었다. 그것도 좀 살림이 넉넉한 그런 집의 어머님들 말이다. 왜냐면 어릴 적 내 기억 속 화목하고 다정한 엄마가 있는 집엔 늘 식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늘 갈망이 있었다. 뭐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같이 살아야 했다. 여태까진 그게 주로 강아지, 물고기, 햄스터, 새, 토끼 같은 동물이었을 뿐. 그리고 식물도 동물과 같은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단 사실을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본격적으로 집안을 초록이로 채우기 시작한 건 채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이 원했다. 지금 여기에, 곁에, 눈 닿는 곳곳에, 초록이를 둬야만 했다.

아기랑 겨울 캠핑은 너무 우리 욕심이고,

꽁꽁 얼어붙은 밖은 황량한 풍경뿐이고,

심지어 내게는 너무 혹독한 12월이었다.


초록이들에게 둘러싸여 남향 아파트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겨울 낮의 시간에 따뜻한 햇볕을 등지고 멍 때리는 순간이 좋다. 식물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뒤에는 이 좋은걸 같이 나눌 순 없을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식물들을 기록하며 내가 치유받는 이 시간들을, 이런 시간이 너무나 간절한 누군가도 경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하려 한다.


초록이가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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