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갈고무나무
뭐든 커다란 게 좋았다. 작은 것보다는 늘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커다랗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눈길이 가곤 했다.
아마 어디서나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이 반영된 취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뱅갈고무나무를 알게 된 건 화상회의를 하다 우연히 보게 된 동료의 집 배경에서였다. 푸릇푸릇하고 동글동글 빼곡한 초록 이파리가 하얀 벽 앞에서 그 존재감을 어찌나 자랑하던지 초록을 좋아할 줄만 알았지 초록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홀린 듯 물어봤다.
“저건 무슨 나무예요?”
30종 가까이 식물을 집에 들여놓은 지금이야 너무나 익숙하고 주변 실내 식물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라는 걸 잘 알지만 당시엔 초록은 나무, 먹는 초록 못 먹는 초록 정도로 구분만 했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부터 나의 뱅갈고무나무 앓이가 시작되었다.
그냥 들이면 됐지만, 문제는 크기였다. 내 키만 한 큰 나무를 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에 흠뻑 빠져 공간을 여백 없이 빼곡히 채우는 것 자체가 싫어진 나로서는 상충된 마음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작은 나무를 큰 나무가 될 때까지 키워보는 건 어떠냐는 남편의 제안은 이미 들리지가 않았고, 나는 오로지 큰 나무에 꽂힌 채로 몇 년을 고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일에 고민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내가 유난히 신중해지는 때는 생물을 집으로 들일 때인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이 커도 평소의 나답지 않게 늘 고민이 길고 행동이 쉽지 않다.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에서였을까.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지만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뱅갈고무나무가 내 공간으로 들어오는 데는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집에 뱅갈고무나무를 들이기로 결심하고선 열심히 당근을 들여다보다 마침 저렴한 가격에 뱅갈 두 그루를 파는 판매자가 있었다. 사실 한 그루만 들이는 것도 3년이 걸렸는데, 2그루를 들이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이미 ‘에라 모르겠다’에 가까웠다. 그렇게 두 그루의 뱅갈고무나무가 23년 겨울, 우리 집으로 왔다.
목대가 제법 굵어 잎이 빼곡한 큰 한 나무와는 다르게 나머지 한 나무는 해를 잘 못 받는 곳에서 자랐던지 키만 길쭉하게 웃자란 수형을 가지고 있었다.
잎도 왠지 시들시들해 보이고, 우리 집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냥 다른 집에 나눔을 보낼까 고민도 했고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집 안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며 가장 해를 오래 받을 수 있는 곳에 작은 고무나무를 위치시켰다.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났을까, 내 걱정하는 마음을 안 것처럼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새 잎을 내줬다. 한번 새 잎을 펼치더니,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새 잎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새 잎들은 놀라울 정도로 급격하게 하루하루 잎이 커졌다. 식물의 생명력과 성장력에 감탄하던 순간들이었다.
연두연두한 아기 잎을 좋아한다.
그 여린 잎을 내기까지 이 나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생각하면 그 순간이 더욱더 귀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빤짝빤짝한 광을 내는 연둣빛 여린 잎이 점점 진한 녹색으로 변하며 커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식물이 사는 방식이 우리가 사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음이 많이 지쳐 있는 요즘,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하루 변화가 없는 듯 변화를 만들어가는 식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는다.
저 친구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일 텐데 이렇게 위로까지 준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극도의 압박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내가 지금 이 순간 제일 힘들어하는 건 ‘빨리빨리’, ‘더욱더’와 같은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단어들이다.
다행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식물들은 내게 ‘빨리빨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식물은 오히려 내게 ‘느림’, ‘slow life‘를 생각해보게 한다. 각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식물들은 모두 다른 속도로 매일의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조금 더 성장해내야 한다고 타의에 의해 강요받는 우리 인생에서 식물이 주는 이만한 위로가 없다.
누가 뭐라 하든 네 속도대로 가면 된다고, 그래도 언젠가는, 때가 되면 나 역시 이런 예쁜 잎을 내보이는 날이 있을 거라고 내게 가르쳐 주는 것만 같다.
식물처럼 살고 싶다.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앞서 꽃을 피운다고 해도 시기 질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속도대로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최적온도: 21-25
중간 이상의 높은 광도 요구
물 주기: 토양의 표면이 말랐을 때 충분히 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