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인생카페 “그 계절”
나는 30년이 다되어가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
나에겐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전원주택에서 개나 키우고 살고 싶어.”
물론 수도권에 살며 도시 인프라 포기 없이 전원주택 생활을 하는 건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현실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여전한 나의 1순위 버킷리스트이자 나의 꿈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주말이면 늘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찾아 외곽으로 나가곤 했다. 아마도 굳이 나가지 않고도 자연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정원이 있는 전원생활의 꿈을 만든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작년 11월, 오랜만에 제주를 찾았다.
자연 그 자체인 제주를 아주 사랑하기에 사실 실내활동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가능한 밖에서 바다를 보고, 오름을 오르고, 올리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19개월 아기와 함께였기에 꽤나 쌀쌀해진 날씨에 내 욕심만 채우려고 외부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나처럼 세부 계획은 없는 우리 부부의 여행 중 어느 비 오는 날, 남편은 내가 분명히 좋아할 만한 카페를 찾았다고 거길 가보자고 했다.
이미 인스타에서 제법 유명한 식물카페였나 보다.
제주 “그 계절”
솔직히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사방이 자연인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왜 카페를 가서 식물을 봐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런디 웬걸, 본의 아니게 오프런을 한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공간을 온전히 우리 셋이서 누리는 호사를 누렸는데 난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공간이 다 있어?”
눈이 휘둥그레져 연신 사진을 찍어대던 나였다. 이런 생각을 했다.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그냥 ‘이거다’라는 느낌.
내가 좋아하는 건 거기에 다 있었다.
우드와 초록이들의 조합
커피
책
은은한 조명
빈티지 가구
자기 취향과 색깔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사장님이 너무 멋있어 그저 부럽다 생각했고, 모르긴 몰라도 자기 인생을 아주 사랑하는 분일 거라는 확신에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졌다.
공간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크구나 그저 감탄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내 이런 공간을 나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냥 들어서기만 해도 생명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 누군가에게는 치유가,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황홀함을 가져다줄 그런 공간.
실행력 하나는 끝내주는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존재감에 쉬이 들이기를 결정하지 못했던 중품 이상의 식물들을 곧장 검색하기 시작했다.
존재감 뿜뿜한 몬스테라와 뱅갈고무나무, 그리고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을 며칠 간격으로 빠르게 들여오고선 줄줄이 식물을 들여왔다.
우리 집은 정남향으로 겨울엔 해가 거실 깊숙이까지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그 시간 햇살 샤워를 좋아한다. 초록 가득해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집 거실 원목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는 사진을 남편에게 찍어 보내며 ”나 브런치카페야 “라고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남편의 답장은 더 가관이었다.
“오, ‘저 계절’, 아니 ”그 (개) 절이네 “
우리끼리만 통하는 개그에 빵 터졌던 아침의 소중한 우리의 일상이었다.
늘 닿지 않는 무언가를 좇는 삶을 살았다.
가까이서 내가 조금의 노력으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놓치고 살았다. 그 삶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이제는 제대로 내 인생의 조종대를 내가 잡을 타이밍이 온 것 같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모이면 내가 그 계절 카페 사장님의 인생의 단단함을 엿봤던 것처럼 나 또한 단단해져 다시 반짝반짝 빛날 수 있을 것 같다.
초록이 주는 그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나는 식물들에게 기대어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