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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저마다의 자리가 있음을

피쉬본

by Slowlifer

어쩌면 인생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다소 진지하고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이 조그마한 식물 ‘피쉬본’이었다.


도무지 성장세를 알 수 없던 나의 피쉬본이었다.

남들은 너무 잘 커서 감당이 안된다는데 어째서인가 몇 달째 손톱만큼도 변화가 없어 보여 생사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예쁜 쪽만 보았다.

물을 줄 때도 선반에 올려둘 때에도 양면 골고루 보지 못하고 내가 보고 싶은 쪽 외엔 눈길도 안 줬다. 그래서 몰랐다. 얘가 나름의 속도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어젯밤 문득 얘는 살아있는 건가 싶어 요리조리 살펴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피쉬본 새끼(자구)였다.


사실 위로 자라지 않는 키에만 온 신경을 쏟았었다. 저기 아래에서 자구가 자라고 있을 줄도 모르고.


이 조그마한 변화가 얼마나 큰 기쁨을 줬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일에 기복이 없는 예상된 남편의 무덤덤한 반응을 알 거면서도 크게 말했다. “짱아!! 얘 새끼 쳤어!!!”


그도 그럴만한 게 이 조그마한 변화엔 내 몫(?)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성장세가 더뎠던 이유에도 내 몫이 있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그동안 요지부동이었던 건 그저 내가 이 친구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히고 맞지 않는 자리에 데려다 놓은 게 그 이유였던 거다.

그냥 보기에 예뻐 보이려고 마른 흙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자갈돌을 듬뿍 올려두었고, 음지에서도 잘 큰다는 말만 듣고 내 삭막한 책상을 장식하고 싶어 햇볕 잘 들지 않는 방에 가져다 놓았으니 어째보면 당연한 결과다.


작은 변화만 주었을 뿐이다.

마른 흙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장식용에 불과했던 자갈을 치웠고, 햇볕이 드는 거실로 그 자리를 옮겨준 것.


이런 일상의 작은 변화가 내게 이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얼마 전 심리검사 결과에서 들었던 말 때문인 것 같다.

원래 기질과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걸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개선된 환경에서는 금방 다시 회복할 거라는 것이 임상심리사의 의견이었고 난 그 말에 안도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 자기 자리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맞지 않는 옷과 맞지 않는 자리에 와 있어 잠시 멈춰 있을 뿐,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조용히 내게 꼭 필요한 커리어 외의 또 다른 성장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또 다른 식물을 구입하러 화훼농원에서 지나가던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도 그랬다.

우리 집에선 그냥 물만 줘도 안에서도 추운 베란다에서도 제일 잘 자라는 게 율마인데, 그 손님은 율마가 키우기 너무 어렵다고 했다.

같은 나무라도, 지금, 어디에,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최적온도 15-20도, 최저온도 10도

직사광선 피해 반양지, 통풍 중요

겉흙 마르면 물 흠뻑, 과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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