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텃밭
아침 세수를 하고 손톱 밑에 까맣게 박힌 흙이 눈에 들어와 손톱을 바짝 깎아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가 이런 애를 고양이 같다고 하는 거야, 영락없는 강아지구만’. 얼마 전 겉모습은 마치 고양이 한 마리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꽤나 햇살이 뜨거워진 6월의 텃밭에 가면 나만큼 용감한 사람도 없는가 싶다. 맨발 크록스 슬리퍼에, 새까맣게 타는 것쯤이야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집에서 입던 헐렁한 반팔티를 그대로 입고 나와 선크림 하나 챙겨 바르지 않았으면서 신경은 쓰였는지 캡모자 하나 덜렁 머리에 얹어놓고는 밭일을 하겠다니 말이다.
가만히 고개를 들여다 지지대 설치에 여념 없는 남편을 올려다보니 이 사람도 나와 못지않다. 똑같은 크록스, 반팔, 장비 하나 없이 대충 집에 있던 끈을 들고와 고수의 손길이 닿은 듯한 옆밭을 곁눈질하고 땅주인 사장님께 귀동냥해가며 열심히인 남편. 이래서 그렇게 다른 우리가 결혼을 했구나 싶었다.
우리는 그렇다 쳐도 아이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똑같이 반팔차림에, 나름 아기니까 선크림은 챙겨 발랐는데 모자가 얼굴을 가려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고,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기가 늘 ’빤작별‘이라고 부르며 신는 나이키 운동화는 얼룩덜룩 흙 범벅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니 어린이집 흰둥이들 사이 유일한 깜둥이가 우리 딸이 될 수밖에. ‘엄마가 미안하다’ 어린이집에사 올라온 사진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과하지만 또다시 이렇게 놀이터 대신 텃밭으로 두 돌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나였다.
마음껏 우리 좋을 대로 해도 좋을 공간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우리만의 공간. 그곳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맨손으로 흙을 만질 수도, 게으른 가짜 농부들이 머쓱하게도 매일매일의 다름을 선물하는 자연의 놀라움에 충분히 경탄할 수도, 경직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도 있었다. 아마 내가 그토록 텃밭을 원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서.
그곳에서 나는 행복하다. 아기가 아직 다 크지 못한 감자를 장난감 모래삽으로 뒤적뒤적 흙을 파내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감자를 쏙쏙 뽑아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남편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 자기가 돕겠다며 노끈을 끝없이 풀어헤치고 있는 것도, 해 질 무렵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서서히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모두 너무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아기가 신기해하며 캐낸 아기 감자들을 계란과 함께 삶아내서 “이거 어제 네가 캐온 감자야 먹어볼래? “하니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토금(소금) 찍어줘 “하는 아기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다.
우리가 텃밭에서 보내는 이 소중한 시간이 내가 마음속 깊은 한편에 가지고 있는, 이제는 흐릿한 내 어릴 적 그저 행복했던 아빠와의 시간처럼 내 아기에게도 가슴 한편에 그저 따뜻했던 추억의 느낌으로 남았으면 하는 작은 욕심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