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화이트 베인)
여름은 식물의 계절인가 보다.
여기저기 초록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 계절은 식물을 좋아하는 내 계절인 것 같기도 하다.
여름에 태어났지만
더위에 취약한 나는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여름이 좋은 이유를 여럿 찾았다.
오직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싱그러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온통 메말라버린 텅 빈 겨울에 쉽게 우울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 우울이 정점을 찍는 듯해 보였던 작년 겨울,
처음으로 집 안을 초록으로 채워야겠다 마음먹었고 나는 초록이들을 통해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요즘은 열대 식물들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필로덴드론들이 그렇다.
내가 처음 빠졌던 필로덴드론은 글로리오섬이었다.
커다란 하트잎에 하얀색 잎맥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보자마자 반해버렸던 아이였는데,
한 겨울에 집으로 들였기에 신엽은 고사하고 이 친구가 이 춥고 긴 겨울을 어떻게든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며 애지중지 보살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 나는 추위에 취약한 열대식물들을 차례로 집으로 들이며, 내 인생의 겨울도 어떻게든 잘 버텨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친구들이 이 추운 겨울을 잘 버티듯 나도 그저 버텨내 보고, 이 친구들이 봄을 맞으면 나 역시 봄을 맞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그 춥고 길었던 겨울은 결국에 지나가고 봄은 돌아왔고 이내 한 여름에 들어서있는 우리는 지금 나의 ’ 때‘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신엽을 열심히도 펴내며 하루하루 예뻐지는 이 친구들을 보며 오늘도 행복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힘든 때를 같이 넘겨준 이 친구들이,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 이 친구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