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좋아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이 만큼이 나에게 적당한 정도라는 것을
나는 그저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멈추는 것에도 대단한
결심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초록에 이끌려 초록을 채워 넣던 것도
이미 충만함을 느끼며 더는 채우지 않는 것도
내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록이들로 나의 알 수 없는 마음의 허기를
부지런히 도 채워 넣었던 지난겨울.
그리고 채워 넣지 않아도 절로 무성해지는 여름,
나는 더 이상 식물을 더 채우고 싶다는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시선 곳곳에 초록이 닿는 딱 이 정도가 내게 맞는,
내게 어울리는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집은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더 이상 뒤집어엎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구와 식물의 배치를
이리저리 옮기던 과거의 다소 불안한 모습의
나는 지금 그 많은 비틀거림을 통해
지금에서는 균형이라는 걸 찾았나 보다.
마침내 균형을 찾아낸 나는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두 손에 핸들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많이 안심할 수 있었다.
언제든 나는 방향을 바꿀 수도 있고
페달의 속도를 내가 조절해낼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자신감 있는 내 모습으로 이끌어줬다.
이제는 빼곡히 채운 선반보다 한 공간쯤
빈 여백이 더 마음에 드는 걸 보니
비로소 내 마음에도
딱 이 정도의 여유가 깃들고 있구나 싶어
이 변화가 꽤나 반갑다.
정글 같은 베란다를 갖고 싶었다.
어느 인스타 식물 인플루언서들이 가진
베란다 가득, 어느 방 한가득,
발 디딜 틈 없이
초록으로 뒤덮인 공간이 부러웠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나는 애초부터 남이 가진 그것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색과 이야기가 담긴
하나뿐인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라는 걸.
살다 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인 끌림의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
내게 식물이 그랬다.
우연히 찾은 식물카페의 그 공간에서
나는 공간이 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위로와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잊을 수 없어
그 공간을 닮은 나의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 그 공간에서보다
훨씬 나다운 나만의 공간에서
나다운 모습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안전하고도 온전한
나의 쉼터를 갈망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나에게 공간은 그저
잠을 자는 곳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집이라는 공간은 내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한 공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식물들은 그러던 내게
공간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집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마음 놓고 편히 쉬라고.
그렇게 나는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였던
베란다정글 만들기 계획을 수정했다.
정글은 내게 필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