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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달랐던 이유

by Slowlifer

늘 궁금했다.

나와 참 많이 닮았지만 또 참 많이 다른 내 동생이.


부러웠다.

나와는 다르게 꽤 많이 단단해 보이는 그 아이가.


나보다 세 살 어린 내 동생은

때로는, 아니 거의 늘 나에게 되려 힘이 되어줬다.


무엇이 됐건 그 아이에게 털어놓으면

항상 내가 찾지 못하고 헤매었던 그 답이 돌아왔다.


참 현명했다.


가끔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한 그 단단함 뒤에 나보다 더 큰 아픔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자신의 인생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아주 잘 살아갔다.


내게 내 동생은 하나뿐인 내 동생이자 친구이자 오빠이자 부모였다. 누나로써 동생에게 더 의지만 한 것 같아 늘 한편으론 미안함이 있지만 우리 남매는 누가 봐도 각별했다.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하지만 진실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뭉쳐야 살았다. 부모라는 그늘에서 마음껏 쉬고 자라지 못한 우리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누군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불안감과 함께 덜 자란 어른이 되었고,


그러는 나를 지켜보며 뒷따라 자라온 내 동생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지켜냈다.




늘 궁금했다.


‘왜 저 아이는 나랑 같은 부모를 가진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나와는 저렇게 다른 모습을 가졌을까?‘


같은 배에서 나왔다고 다 같은 건 아니라지만, 기본 성향이 참 많이 닮았는데도 불구하고 내 동생은 늘 나보다 인생을 삼십 년은 더 산 사람처럼 생각했고, 덤덤했고, 씩씩했고, 용감했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지난 주말, 나는 드디어 그 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동생은 내가 찾아 헤매던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를 위한 혼자의 시간 있었던가’,의 차이였다.


내가 38살이 되어서야 나를 찾아 나섰다면,

내 동생은 이미 20대 초에 치열하게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여행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했고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그 시간을 통해 알아냈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 뒤에는 그런 자신이, 누구보다 예민하고 불안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갔다고 한다.


그 결과 누가 봐도 주체적이고 건강한 삶,

자기의 삶을 사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전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누나, 계속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지 말고

좀 쉬어라. 한 번도 쉬어본 적 없잖아. “


방법이 없다며 늘 앞만보고 달리는 내가 동생 눈에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늘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었다.

내가 듣지 않았을 뿐.


당시 잘 들리지 않았던 말.

쉬지 않고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위한 고민과 생각, 나만의 텅 빈 시간은 생각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치일 뿐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


내 동생은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시간이 내 인생 통틀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간인지를.


하지만 내가 그랬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후순위로 두고 살아간다.


언제나 지금은 그럴 여건이 안된다며,

늘 그럴듯한 현실적인 핑계를 갖다 대며,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잃은 채 살아간다.



나보다 15년은 빠르게 자신의 인생을 고민했던 내 동생은 나보다 15년은 더 건강하게 자신을 지키며 누구보다 즐겁게 살아왔다.


동생보다 15년 느린 누나는 지금이라도 나만의 텅 빈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를 깨달아 다시 내 삶의 주체권을 찾아왔다.


느려도 괜찮다.

모두의 삶은 각자의 속도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인생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엔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쉼이 필요하다고.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그래야 다시 또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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