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나에게도 일어났고
드라마 대사에서처럼 의사 선생님은 아빠의 회복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아빠를 보고 왔다.
내가 알던 그 눈빛이었다.
한 번만 더 아빠 눈을 보고 이야기만 할 수 있었으면
했던 내 바람은 한 번이 되고 두 번이 되고,
그리고 또 다시 찾은 중환자실의 아빠는
이제 내가 알던 그 눈빛으로 나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아주었다.
안심하라는 듯이.
내일 아빠는 기도절개수술을 받는다.
호흡기 내과에 이어 이비인후과 의사 면담까지 거친 후 다시 한 번 면회를 허락 받아 아빠를 만나고 왔다.
기저질환이 있기에 수술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알고 있으셔야한다고 또 다시 병원에서는 최악의 상황들을 설명했다.
이제는 수술 중 또 다시 이전과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사전에 동의한 부분이지만 여전히 그 선택이 무겁다.
15분이면 끝나는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지만 최악의 상황을 설명듣고는 또 다시 머리가 멍해진다.
분명 아빠는 돌아왔다.
이제 수술만 잘 되고 심장만 잘 버텨준다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지내야 하더라도 일반병실 생활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우리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것 뿐인 지금, 여전히 마음이 혼란하다.
아빠의 시간을 가늠할 수 없고,
분명 며칠전까지 장난치던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던 모습을 목격한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빠는 이제 우리의 농담에 웃어도 보였고,
걱정할 우리를 위해 그게 최선인듯 어디 불편한데 없냐는 말에 연신 고개를 저으셨다.
팔도 묶인채로 많이 불편할텐데,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그래도 괜찮다고만 했다.
불안한 마음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려고 한다.
내일 수술만 잘 버텨주면 아빠가 그래도 조금은 더 우리곁에 머물러 줄 것 같아서.
그러면 우리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아빠 옆에서 조금 더 떠들고, 조금 더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직은 내 몸도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 편으로는 언제건 이전과 같은 상황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상황에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성과, 한 편으로는 그래도 이번만 넘기면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감성이 오락가락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내가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이성보단 감성에 의존에 희망을 보고싶은 마음이 훨씬 큰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