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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11. 2023

Dream Job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책과 만화책을 아주 좋아했다.


한때는 소설가가 꿈이었으나 나의 상상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빛의 속도로 포기했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상상력과 더불어 나의 하찮은 그림솜씨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다가 꿈은 현실적인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책방 주인, 만화방 주인, 책 대여점 주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선택 같아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줄 알았던 이 선택은 아주 비현실적이었다. 책방 주인이 되려면 가게를 열 자금이 필요하고, 먹고살려면 어떤 책을 가져다 놔야 할지 어떻게 손님을 불러 모을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꿈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 주어진 일을 했다.




얼마 전 남편의 직속 상사가 이전에 근무하던 정부부처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직을 맡은 지 1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유는 새로 가는 General Manager라는 직책이 그녀의 Dream Job이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꿈의 직업일 수 있냐고. 그 반응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일 저일 기웃거리고 있던 내가 나보다 세 살 어린, 아직 대학생이던 사촌 동생이 공무원이 꿈이라고 말했을 때 보였던 반응과 비슷했다. 나 자신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었음에도 사촌 동생의 현실적인 꿈을 어이없어하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냐고. 수의사였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그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피를 보면 기절해서(실제로 진짜 기절을 한다는데 집에 둘이 있을 때 나한테 사고가 생겨 피를 철철 흘리면 어떻게 될지 눈앞이 깜깜하다!) 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다음은 축구 해설가. 축구선수가 될 깜냥은 아니었기에 일치감치 접고 축구를 공짜로 볼 수 있는 해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은 일을 안 하는 게 꿈이라면서 자급자족할 만큼만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단다.




나는 서른이 넘어 뉴질랜드에 와서 잠시 학교를 다니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어린이집 보조 교사 땜빵 알바부터 이십 대 때도 안 해본 카페, 레스토랑 서빙, 달러샵 캐셔(이 달러샵은 일한 첫날, 화장실이 너무 급해 문 닫을 시간 5분 남기고 문 닫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걸 CCTV로 본 한국인 주인에게 반나절 만에 잘렸다.) 등등. 대학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기 전까지 가장 오래 한 일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초밥, 덮밥 가게 직원이었다.


한국인 정신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한 단계씩 천천히 올라가며 버텨왔다. 뉴질랜드에 온 이후 지금껏 꿈이 있었다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 좀 더 돈을 많이 벌고 좀 더 나은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대출은 남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해냈다고 믿는다.


몇 년 전 남편이 번역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항상 한국에 있는 엄마 아빠를 걱정하면서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 나이에 해 먹고살게 없다고 한탄하는 나에게 번역을 하면 언젠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직장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쓸 능력은 없었던 아이에게 번역가라는 직업은 꽤 괜찮은 딜이었다. 누가 써놓은 좋은 글을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번역도 만만치 않았다. 생존 영어를 해 온 나에게 영어는 여전히 높은 벽이었고 외국에 살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이친 우리말도 문제였다. 영어와 한국어는 반비례하지 않는다. 영어실력은 늘지 않아도 한국어실력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그렇게 또 하나 꿈이 생겼다. 이제는 마흔을 훌쩍 넘겼고 당장 하루하루 직장생활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




우리 남편이나 나처럼 꿈은 있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는 일을 하며 산다. 그리고 꿈도 변한다. Dream Job은 아니었어도 하다 보니 그 일을 더 잘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내 꿈은 잠시 접은 채 아이를 낳아 키우며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한다. 


크든 작든 꿈은 꿈이고,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이루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꿈이 있어서 오늘 조금 더 행복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꿈을 향해 가는 당신, 꼭 꿈을 이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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