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파서 골골거리면 엄마는 꼭 나쁜 것만 닮았다고 한 소리한다. 그럼 난 엄마가 그렇게 낳았지 않았냐며 투덜거린다.
세상엔 우성인자와 열성인자가 있다. 우리 집에서 보면 오빠는 대체로 우성인자를 타고났고 나는 열성인자를 타고났다. 오빠는 머리가 좋고 나는 머리가 나쁘다. 엄마는 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제대로 안 쓰는 거라고 하지만(자기 자식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빠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오빠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훨씬 전에 한글을 떼서 간판을 하나하나 읽고 다녔고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기억, 니은을 익혔다. 오빠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 이미 영어를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알파벳을 배웠다. 오빠는 항상 전교 오 등 안에 들었고 나는 반에서 오 등 안에도 못 들었다.
오빠는 태권도도 주산도 잘해서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뭐든 시작하면 꾸준히 했다. 나는 미술 학원은 다니다 말다 하며 한 이 년 다녔지만 피아노 학원과 주산 학원은 육 개월도 넘기지 못했다.
이런 머리와 끈기는 다 엄마에게서 왔다. 아빠도 물론 끈기는 있었지만 돈을 벌 때만 이런 끈기를 발휘했다.
엄마에게는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뚝심이 있다. 아빠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이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의 시옷 자도 내뱉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하지만 아빠에게는 타고난 체력이 있었다. 웬만하면 병치레를 하는 일이 없었고 하루, 이틀 푹 자고 나면 나아지는 굳센 체력.
그렇게 오빠는 엄마의 머리와 끈기와 뚝심, 아빠의 체력을 이어받았고 나는 아빠의 머리와 소심함, 엄마의 체력을 물려받았다.
당연히 억울한 적도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난 걸까. 시작이 달랐으면 지금의 나도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게 신세한탄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시작이 다르니 더 노력하거나 생각을 달리 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 얼굴은 엄마를 닮았다. 딸이라면 우리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나도 우성인자 하나는 받은 셈이다.
실은 유전학적으로 봤을 때 우성인자가 '우월한 형질'은 아니다. 단순히 '어떤 유전자가 먼저 발현하느냐'에 따라 우성인자와 열성인자가 나뉜다. 그리고 먼저 발현한 유전자가 우리 일생을 결정짓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빠가 내 우성인자들을 빼앗아갔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이 우스워진다.
열성인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