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轉) – 정지된 세상 속에 스며든 균열
이곳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부신 태양은 내 시선을 거침없이 뚝 끊어놓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올려다보아도
“자, 3초 드립니다—하늘 감상 끝!” 하고 마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집을
떠올리고 싶었지만, 그 순간이 너무 짧았다. 태양은 내게 말 없는 경고를 보내듯, 찰나의
그리움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모래먼지로 가득한 공기는 사람의 목을 간질였다. 아니, 간지럽힌다기보단 약 올리
는 데 더 가까웠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떠나온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갔다.
가족의 웃는 얼굴, 보고싶은 친구들, 출퇴근길에 마주하던 익숙한 거리와 소음들.
그 모든 평범함이 그리웠다.
집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마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나다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장소였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결국 나는 집이 그리웠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조그마한 상자 이야기가 나온다.
비행기 조종사는 어린 왕자를 위해, 그가 원하고 갖고 싶어 하는 양을 볼 수 있는 작은 상자
를 그려주었다. 나 역시 내 마음속에 그런 상자를 그렸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담았다. 기억과 감정을 저장하는 서랍 속의 작은 상자. 지칠 때면, 나는 가만히
서랍을 열어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집의 공기, 식탁 위 그릇 소리, 리모컨 버튼에 바뀌던 TV 채널 소리까지
다 들어 있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그들의 목소리-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많은 것에 지칠 때면 나는 그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고, 그리운 것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상자 안에는 그리움의 전부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곤 했다.
그리움은 때때로 나를 괴롭혔지만, 묘한 위로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메마른 공기 속에서도, 마음속 그 상자는 자리를 지켰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내가 다른 어디선가 그 상자를 다시 열게 된다면—그 안에는 이곳
에서 집을 그리워하던 나의 마음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까.
척박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남아 있던 따스한 마음이 말이다.
[사진 1] 강렬히 내리쬐는 뙤약볕에 선글라스 안에서도 눈을 뜨기 어렵다
[사진 2] 상자 안에는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이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