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하나하나 해결해 가기,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우여곡절 끝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훈련시간이 확정되었다.
이쯤 나는 민관소방합동훈련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전환 배치될 예정이었다.
전환 배치가 이유는 아니었지만 민관소방합동훈련 대부분의 협의는 호운이와 해연이에게 맡겨놓고
그네들이 어려워하는 것들만 해결해주려 했다.
내가 언제까지 녀석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나름의 핑계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호운이와 해연이가 나 없이도 훈련을 계획하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리라 확신이 있었다.
또한 당시 내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당시 나는 극심한 우울증을 다시금 겪고 있었고 수시로 감정이 널을 뛰었다.
또한 하루 평균 자는 시간이 2~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호운이와 해연이는 짐작했을지 모르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에둘러 갱년기가 빨리 왔나 봐라는 이야기로 훈련의 주관을 둘이 해주었음 한다 간략하게 말하였을 뿐이니까
녀석들은 내 생각 이상으로 해주었다.
가끔씩 해연이가 확인해 주어야 될 것들을 놓쳐 내 속을 끓이게 하기는 했지만
이번 훈련의 핵심은 대피 인원의 확인이었다.
대피 인원의 확인이 중요한 것은 실제 화재 발생 시 정확한 인원확인과 그에 따른 잔류 인원 파악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물류센터 내에서 최적의 구조 방법을 구상할 수 있고,
이는 곧 요구조자와 구조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대피 인원의 확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연이가 맡았다.
해연이를 믿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마 모든 걸 갖추어 시작하는 녀석의 꼼꼼함으로 인하여 결과물이 늦어지지 않을까
걱정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해연이는 어디 보여도 자랑스러운 후배이고, 아끼는 동생이다.
몸에 배어 있는 성실함과 책임감은 일을 그르치게, 어긋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가끔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실수를 하였다.
당시 나에게 이 점이 큰 걱정이었다.
항상 확인과 확인을 하는 내 성격 때문인지 하루하루 녀석은 날이 서기 시작했고,
별것 아닌 문제로 나와 크게 다투었다.
그래 호운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해연이와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어쩌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하루, 이틀 시간이 점점 지나고 훈련은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준비가 거의 다 되었음을 호운에게 전달받았던 터라 큰 걱정은 없었다.
마침내 훈련 당일 아침이 되었다.
일찌감치 호운이에게 맡으려는 이가 없는 허드렛일을 맡겨달라 이야기해 놓았던 터라
나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마냥 호운이와 해연이가 돋보였으면 좋겠다 생각 들었다.
뭔가 하고 싶다.
앞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나였지만, 마냥 두 녀석을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다.
잘해왔고, 애써왔으니까,
대형사업장의 안전보건을 챙겨가며 좋은 소리보다 싫은 소리를, 득 보다 실이 많았던 나였다.
그냥 둘은 내가 걸어온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업장은 힘만 들고 얻는 것이 없어 사내 기피 대상 사업장으로 유명하다.
기피 대상 사업장에 아무런 이유 없이 형이 아프니까 내가 형의 곁을 지켜야지라며 와준 호운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소통을 하며, 실체적인 업무를 하고 싶어요, 저는 여기가 좋아요. 라며 환하게 웃어주던
해연이
돋보였으면 좋겠고, 빛 났으면 좋겠다.
마냥 순조로울 것 같았던 훈련 당일의 아침이었다.
이대로 훈련이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