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들다 하여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려 했다, 조그마한 틈이나마 만들어야 하니까!

by 갬성장인

초순수 공사가 처음이다 보니 여러모로 익숙하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사무실 내 책꽂이를 둘러보다 초순수와 관련된 책 한 권을 찾았다.

다소 두꺼운 편이었지만 초순수의 개념조차 없던 나에게 가뭄의 단비 같았다.

첫 장을 펼쳐보니 ‘물이란?’ 소제목으로 물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었다.

다행히 환경공학을 전공하여 수처리의 기본 개념은 가지고 있었다.

어려웠지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흐릿하던 무엇인가가

조금씩 형상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초순수 공사를 전담해 온 박지현과장과 항상 비교되고 있었기에


업무에 관련된 책이기는 하였으나 일과 중에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을 수 없었다.

당시 근무시간은 08시~17시였다.

하지만, 촉박한 공사 기간으로 인한 야간으로 20시~22시쯤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현장을 다녀오고 나면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에 책을 읽으며, 현장과 비교해 보았다.

다른 점도 많았지만 비슷한 점도 많았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 시작하였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갈 길은 멀지만, 마냥 막연하지는 않았다.

“차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현장에 다녀오겠다던 김영기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을 건넨다.

“마음 편히 퇴근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서요. 허허”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이것저것 살피고 계신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퇴근 전에 초순수 관련 자료 몇 가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론, 책보다야 못하겠지만 당장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라 너무 걱정하고 마음 졸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김과장은 내가 마음 졸이며, 이것저것 살피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먼저 퇴근하겠다며, 인사를 건네던 김과장이 뒤돌아서며 말을 이어간다.

“아참, 자료 보내드리며, 제 나름 번호를 붙여보았습니다.

번호 순서대로 살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웃는 낯으로 뒤돌아서는 김과장이 고맙기만 하다.


언젠가 김과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현장에서 차장님과 제가 서로 믿지 못하고 반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방이 적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특히, 박지현과장은 차장님 오실 때부터 불만이 많아서 특히나 조심하십시오.“

“박과장이요?”

“초순수 경력도 없으면서 직급은 차장이라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사실이긴 했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과장, 차장 생각지 말고 잘 알려 달라 수차례 부탁하며 어렵고 힘든 일은

도맡아 할 테니 어려워 생각지 말고 이야기해 달라 하였는데

참 쉽지 않은 시간이 이어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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